[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5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NH농협)가 일제히 ‘생산적 금융’ 전환 프로젝트를 내놨다. 향후 5년간 5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 부동산·담보 위주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자금 물꼬를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발맞춘 계획은 윤곽을 드러냈지만 시장의 관심은 이제 ‘실행력’으로 향한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 공급 계획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5대 금융지주 본사 사옥 [자료=각사]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전체가 생산적·포용금융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총 508조원을 향후 5년간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각각 110조원을, NH농협금융이 108조원, 하나금융 100조원, 우리금융이 80조원을 투입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부동산 중심의 자금 공급 관행을 깨고 반도체, AI, 벤처 등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자금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다만 관건은 각 프로젝트의 실행력이다. 첨단산업·혁신기업·지역균형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만큼 구체적인 실행력 확보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금융지주들도 ‘무늬만 생산적 금융’이라는 비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실행 체계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우선 그룹 차원의 전담 조직 또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해 최고경영진(CEO)이 직접 진도를 챙긴다.

KB금융은 계열사 사장단을 포함한 경영진 21명이 참여하는 ‘그룹 생산적금융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이 협의회는 추진 방향과 세부 실행 방안을 논의하고 주기적으로 실적을 점검한다. 계열사별로도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한다.

신한금융은 그룹 통합 관리조직 ‘생산적 금융 PMO(Project Management Office)’를 가동했다. PMO는 산업별 추진 목표 설정부터 유망산업·혁신기업 발굴, 자본 영향도 분석, 자회사별 이행 점검 및 의사결정 관리, 성과 모니터링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하나금융은 이승열 부회장이 총괄하는 ‘경제성장전략 TF’를,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이 주재하는 ‘첨단전략산업금융 협의회’를 구축했다.

NH농협금융은 이찬우 회장 직속 ‘생산적금융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난달 2일부터 ‘생산적 금융 활성화 전담조직’을 가동해 ▲모험자본/에쿼티 분과 ▲투·융자 분과 ▲국민성장펀드 분과 등 3개 분과의 실행 구조를 운영 중이다.

단순 컨트롤 타워 신설에 그치지 않는다. 추진 실적을 경영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해 책임경영을 강화한다. 신한금융은 생산적 금융 추진 실적을 참여 그룹사의 핵심 전략과제로 포함시켜 경영진 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다. 우리금융도 자회사별 성과평가에 ‘생산적·포용금융’ 항목을 반영하기로 했다.

기존 영업 방식의 근본적인 조직 개편도 추진된다. KB금융은 계열사 내 부동산금융 영업조직을 축소하고 기업·인프라금융 영업조직을 확대하는 조직개편을 검토 중이다. 신한금융은 은행 중심으로 조직된 ‘초혁신경제 성장지원 추진단’을 통해 부동산을 제외한 기업대출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역시 5대 금융의 실행력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업권 소통·점검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추진 현황과 성과를 검증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첫 점검회의에서 권대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무늬만 생산적 금융’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금융당국이 ‘진정성’을 평가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향후 점검회의에서는 각 금융지주 간의 실질적인 성과가 테이블 위에 오르며 비교·평가될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대마진 중심의 기존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뚜렷하다”면서도 “다만 리스크가 큰 혁신기업 투자를 늘리려면 구조적인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