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금융사고를 근절하겠다며 기존의 ‘책무구조도’를 넘어서는 강력한 제재 장치들을 예고했다. 경영진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징벌적 과징금과 보수환수제 도입이 그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공개한 대선 정책 공약집을 통해 “금융사고 책임 떠넘기기 관행을 근절하겠다”며 경영진의 책임과 부담을 높이는 제도의 도입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회복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책무구조도를 엄격 적용해 금융사고 시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임원급까지 내부통제 책임을 엄격하게 물을 방침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의 직책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제도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도 불린다.
기존에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경우 제재가 감면되는 조항이 있어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이 감면 조항을 축소해 실질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더 나아가 현재 일부 금융회사에만 적용되던 대주주 지분매각명령권을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 적용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주주가 경영권 남용이나 내부통제 미비로 금융사고를 일으킬 경우, 보유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징벌적 과징금과 보수환수제 도입이 추진된다. 금융보안 확보의무 위반 등으로 금융보안사고 발생 시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재무제표에 중대한 오류 등이 발견되면 경영진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보수를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제재 수단의 도입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징벌적 과징금의 경우 2010년대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와 불완전판매, 내부통제 위반 등 금융사고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으로 금융상품 판매원칙 위반 시 이익의 5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지만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보안 확보 의무를 위반해 대규모 해킹이나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거나 내부통제 실패로 횡령·배임 등 중대 금융사고가 터질 경우 기존 과징금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금전적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환수제는 2023년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언급된 바 있고 2024년 민주당의 총선 공약으로 제시됐다. 이번에 대선 공약으로도 거론되면서 입법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횡령, 배임, 불완전판매 사고로 신뢰를 잃은 은행권은 정부의 강경한 정책 기조에 “할 말이 없다”는 분위기다. 대규모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올해 1분기 은행별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를 보면 5대 은행에서만 총 23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분기 발생한 금융사고 6건과 비교해 4배 급증했다. 외부인에 의한 사기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횡령 4건, 실명제 위반 2건, 배임 1건이 뒤를 이었다. 기타 금융질서 문란행위도 6건 발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선 공약집에 언급된 수준으로 정부 정책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내부통제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재 수위가 과도할까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21대 대선 결과를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서 “책무구조도를 엄격하게 적용해 임원의 책임을 묻는 등 금융사고 발생 시 이에 대한 검사·제재가 대폭 강화될 것”이라며 “핵심성과지표(KPI) 합리화와 같은 금융회사 내부 평가제도 개선까지 폭넓게 포괄하고 있는 만큼 금융사는 KPI를 포함한 인센티브가 단기 실적주의와 금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등 내부 평가제도에 대해 세심하게 점검 및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