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재계의 연말 조직 개편 무대에 젊은 오너들이 본격적으로 올라섰다.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라 업계 최전선에서 실적과 의사결정으로 평가받는 자리에서 주목받는다. 이들은 부모세대의 노후한 포트폴리오를 손보고 새로운 성장축을 세워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친환경·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글로벌 확장이 겹친 지금이 승부처다. 여기서 내놓는 전략이 기업의 ‘다음 10년’의 먹거리를 책임지게 된다. 막을 올린 뉴 리더십이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변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코오롱그룹 이규호 부회장. (사진=코오롱그룹)

코오롱 4세 이규호 부회장이 인더·ENP 합병과 모빌리티 완전 자회사 편입을 동시에 추진하며 석유화학 부진 국면에서 코오롱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달 24일 이사회에서 자회사 코오롱이앤피 흡수합병을 결의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에 대응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규호 부회장의 ‘리밸런싱’은 부회장 승진 전후 그룹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인더·ENP 합병은 이 리밸런싱 작업의 정점으로 읽힌다.

중국 수요 둔화와 자급률 상승, 글로벌 공급과잉 여파로 석유화학 업황이 악화한 상태다. 코오롱은 범용 화학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이번 합병을 택했다.

회사는 이번 합병의 목적을 ‘중복 투자와 조직 비효율 해소,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 연구개발(R&D) 역량 통합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로 제시하며 포트폴리오 조정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코오롱인더는 코스피 상장사 코오롱이앤피(지분 66.68%)를 흡수합병해 지주-자회사 중복 상장 구조를 정리한다. 석유수지·산업용 수지 등 기존 화학부문과 폴리옥시메틸렌(POM), 컴파운드 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을 한 데 묶는 것이 골자다.

합병 이후에는 전기차·전자·친환경 부품용 소재 비중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배열해 업황 변동성에 덜 흔들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규호 부회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코오롱글로벌과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 전략기획을 거쳤다. 2023년 말에는 지주사 ㈜코오롱 전략부문 부회장에 올랐다. 그룹은 지주사를 지원부문과 전략부문으로 나눴다. 안병덕 부회장이 지원부문을, 이 부회장이 전략부문을 맡는 투톱 체제를 꾸렸다.

부회장 승진 전에는 모빌리티가 그의 무대였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 시절 인적분할과 재상장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수입차와 인증중고차, 프리미엄 오디오 등으로 사업을 넓혀 모빌리티를 독립 축으로 키웠다는 평가다.

모빌리티 부문은 지배구조 재편이 진행 중이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2023년 1월 코오롱글로벌에서 인적분할돼 재상장한 회사다. BMW와 미니, 롤스로이스 차량 판매와 정비가 주력 사업이다. 코오롱은 공개매수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지분 100%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2026년 1월 상장폐지를 목표로 완전 자회사 전환 수순을 밟는 중이다. 의사결정 속도와 효율성을 높여 수입차와 중고차, 신사업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비핵심 자산 매각도 리빌딩의 한 축이다. 경기 안성 우정힐스CC 매각 추진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골프장까지 매물로 내놓아 재무 여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꼽힌다. 확보한 자금은 화학·모빌리티 등 주력 사업에 투입할 실탄이 된다. 다만 희망 매각가를 둘러싼 원매자와의 이견 탓에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매각 시점과 조건이 향후 재무 개선 속도를 가를 변수다.

지배력 측면에서는 ‘지분 0% 후계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단계에 들어갔다. 이 부회장은 2025년 11~12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벌 지분을 처음으로 장내 매수해 상장 계열사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전히 지주사 ㈜코오롱 지분은 없지만 사업 재편의 핵심 계열사부터 지분을 쌓는 행보는 구조개편과 책임경영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지주사 ㈜코오롱 전략부문 각자대표 부회장에 오른 뒤의 행보를 “지분보다 구조개편과 성과로 승계 구도를 다지는 과정”으로 본다.

인더·ENP 합병과 모빌리티·자산매각의 성과가 코오롱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