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지난해까지 역대급 호황을 구가했던 국내 타이어 업계가 올해 들어 돌연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2일 타이어 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는 각각 오너 리스크와 대형 화재, 그리고 미국발 관세 폭탄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성장 신화’ 뒤에 감춰져 있던 구조적 취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00억대 횡령·배임 혐의 관련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타이어 리더십 공백..금호타이어 화재, 공급망 약점 드러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조현범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구속으로 경영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그룹의 미래 전략과 글로벌 투자, 신사업 추진을 직접 이끌어온 오너의 부재는 단순한 경영 차질을 넘어, 투자자 신뢰 하락과 의사결정 마비로 직결되고 있다.

한온시스템과의 시너지 창출, 미국발 관세 대응 등 중대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는 기업가치와 주가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한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뿌리 깊은 만큼 단기간 내 정상화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파트너십이나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사업이 표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달 17일 광주공장 대형 화재로 생산라인 절반 이상이 초토화되며 국내 생산량의 절반, 글로벌 생산의 20%를 담당하는 핵심 시설이 멈췄다.

생산 중단은 곧바로 국내외 완성차 업체 납품 차질과 공급망 붕괴로 이어졌다.

현대차, 기아, 르노코리아 등 주요 고객사에 대한 공급 불안이 현실화됐다. 수출용 타이어 일정도 대폭 지연될 전망이다.

이에 협력사와 지역경제에까지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생산시설의 지역 집중, 공급망 다변화 미비 등 구조적 리스크가 이번 사태로 고스란히 노출됐다.

정일택 금호타이어 대표는 "현재 비상 체제를 가동 중으로 광주 공장 생산품을 타 공장에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인근 곡성공장에서 일부 생산을 대체하고 있지만 이미 풀가동 상태여서 단기 보완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업계에서는 “생산시설이 한 곳에 집중된 구조적 한계가 이번 화재로 고스란히 노출됐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7시 11분 광주 광산구 소촌동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77시간만인 20일 오전 11시 50분 완전 진화됐다. (사진=연합뉴스)

관세폭탄까지 더해져..구조적 리스크가 현실로

미국 정부가 지난 4월부터 한국산 타이어를 포함한 자동차 부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실제로 부과하면서, 국내 타이어 업계의 미국 수출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저하가 이미 현실화됐다.

국내 타이어 업체들은 북미 시장 매출 의존도가 20~30%에 달하는 만큼,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번 관세 부과로 인해 국내 타이어 업계는 업체별로 연간 수천억 원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관세 부담이 커지면서 중국·인도 등 신흥 경쟁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돼, 시장 잠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납품가격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타이어 업체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호황은 구조적 리스크를 가렸을 뿐 근본적 체질 개선 없이 외형 성장에만 집중한 업계의 한계를 이번 위기가 여실히 보여준다. 경영 리더십에 대한 과도한 의존, 생산시설 집중, 글로벌 리스크 대응력 부족이 모두 한꺼번에 터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황기에는 리스크 관리가 뒷전으로 밀렸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그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타이어 빅2 모두 위기관리 시스템 전면 재점검과 공급망 다변화, 경영 투명성 확보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