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LG화학이 전통 석유화학 사업을 대폭 정리하고 미래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면 개편하는 '3조원 대수술'에 나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워터솔루션 사업부 1조4000억원 매각을 확정한 데 이어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매각도 추진하며 확보된 자금을 첨단소재와 배터리 핵심소재 개발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LG화학 여수공장 용성단지 (사진=LG화학)

"헐값 매각 우려" NCC 협상 난항

LG화학은 지난 13일 이사회에서 첨단소재사업본부 내 워터솔루션 사업을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 1조4000억원에 매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024년 기준 매출 약 2500억원을 기록한 이 사업부문은 올해 연말 거래가 완료될 예정이다.

하지만 2조7000억원이 투입된 여수 NCC 2공장 매각은 예상보다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2023년부터 쿠웨이트 국영 석유공사(KPC) 자회사인 PIC와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자산가치 산정을 둘러싼 견해차로 사실상 결렬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이 투자 금액을 기준으로 매각가를 책정하려는 반면 쿠웨이트 측은 현재 시장상황을 반영한 더 낮은 금액을 제시하고 있다"며 "헐값 매각 논란을 우려한 LG화학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부채현금확보 절실..확보 자금은 미래 먹거리로

LG화학의 공격적 자산매각 배경에는 급속히 악화된 재무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연결 부채는 47조원으로 작년 4분기 45조9000억원 대비 1조1000억원 늘어났다. 차입금도 27조4000억원에서 29조4000억원으로 증가해 차입금의존도가 30.9%로 30%선을 넘어섰다.

특히 연결대상 종속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 공장 신설 등 대규모 투자를 위해 단기간에 회사채를 대량 발행하면서 LG화학 전체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흔들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영업활동 현금흐름만으로는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자산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확보된 자금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첨단소재 사업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첨단소재 부문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0% 급증한 2596억원을 기록한 반면, 석유화학 부문 투자는 15.7% 감소한 2200억원에 그쳤다.

핵심 타깃은 자동차용 고기능성 접착제 시장이다. LG화학은 2018년 북미 1위 기업 유니실 인수에 이어 올해 HL만도와 기술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하며 시장 지배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재 9조원 규모인 글로벌 자동차용 접착제 시장이 2030년 16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인 가운데 선제적 기술 개발로 시장 선점을 노리는 전략이다.

전기차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도 기술 혁신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LG화학은 올해 상반기부터 전구체 프리 양극재(LPF) 국내 최초 양산을 시작했다.

별도의 전구체 없이 맞춤 설계된 메탈을 소성해 양극재를 제조하는 이 기술은 저온 출력 성능 개선과 개발 기간 단축, 탄소 배출 저감 등의 장점을 갖는다.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 우위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LG화학 본사 (사진=LG화학)

추가 매각 카드 만지작

LG화학은 이미 2023년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약 1조1000억원), 진단사업부(1500억원) 매각을 완료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소재 사업, 에스테틱사업부 등이 추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일부 매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LG화학 측은 "재무건전성 개선과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사업부 추가 매각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으며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의 이번 구조조정은 작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3.8% 급감한 9168억원을 기록하며 4분기에는 2019년 이후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위기 상황에서 나온 '생존 전략'이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성공하려면 매각 자금을 미래사업에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단순한 사업 정리를 넘어 진정한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