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는 어떻게 예금상품 둔갑했나..은행 본점 차원 ‘고객보호’ 방기

설명의무 위반·대리 가입·고령자 보호 소홀·서류 변조 등 다수
원금보장·예금 선호 고객도 ELS 가입 유도..“KPI 통해 판매독려”
일선 영업점에 ‘과거 10년간 손실발생 0건’ 등 권유 멘트 배포
판매실적 눈멀어 조단위 배상금·과징금..“사후수습 노력 반영”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3.12 10:57 의견 0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당국 검사 결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 ‘예금 선호’, ‘원금보장’, ‘노후자금 마련’을 원하는 고객에게까지 적극 권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인 홍콩ELS가 일선 영업점에서는 사실상 예금상품으로 취급됐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전날 홍콩H지수 ELS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판매사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 등 5개 은행, 한국투자·미래·삼성·KB·NH·신한 등 6개 증권사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이 2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금감원은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소비자보호 규제 및 절차가 대폭 강화됐으나 실제 판매과정에서 충실히 작동되지 않았다”며 “본점의 판매시스템 설계 미흡으로 인한 판매 규제 위반 및 일선 판매현장의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등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사결과 영업점 개별 판매과정에서 적합성 원칙·설명의무 위반, 대리 가입, 고령자 보호 소홀, 서류 변조 등 다수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

적합성 원칙 위반은 고객의 투자성향이 주가연계신탁(ELT) 가입이 불가한 위험중립형으로 나오자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2021년 3월 한 은행 직원은 87세 고령 고객의 투자성향 분석 과정에서 예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체크하면 가입이 안되므로 가입할 수 있도록 투자성향을 상향하도록 했다. 특히 청력이 약했던 이 고객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고 했지만 직원이 “이해했다”고 답하도록 반복 요청했다. 중도해지수수료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능하면 해지하시면 안된다”고 왜곡 설명하기도 했다.

대리가입 및 허위녹취도 빈번했다. 2021년 6월 한 은행 판매직원은 투자자에게 유선으로 ELT 가입을 권유했으나 방문이 어렵다고 하자 고객 대신 투자성향진단 설문지, 상품설명서, 가입신청서를 직접 작성·서명했다. 판매과정 녹취 때는 다른 직원이 고객 역할을 하면서 허위로 진행했다.

또 다른 은행은 배우자를 대신해 방문한 고객에게 ELS 재가입을 권유하며 본인의 가입의사 확인없이 기존에 제출돼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 발급일자를 변조해 가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영업 현장에서 발생한 대다수 불완전판매의 주된 원인으로 본사의 이익우선 영업행태에 따른 부적절한 판매정책과 판매시스템의 설계 부실을 들었다. 투자자 손실 위험 확대기에 오히려 과도한 영업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지표를 부적정하게 설계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한 점이 홍콩 ELS 대규모 손실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ELS 판매사들은 고객 손실위험이 커진 시기에도 판매한도 관리를 하지 않거나 성과평가지표(KPI)를 통해 판매를 독려함으로써 불완전판매를 조장한 측면이 컸다”며 “본점의 상품 판매제도가 적합성원칙, 설명의무 등 판매원칙에 부합하지 않았고 개별 판매과정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고 짚었다.

특히 투자 피해자들이 가입 과정에서 들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는 ‘과거 10년간 손실발생 0건’, ‘과거 10년 동안 원금손실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검증된 상품’ 등의 권유멘트도 본사가 영업점에 배포한 안내자료에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은행은 ELS 발행사의 증권신고서에는 손실위험 분석기간이 과거 20년으로 돼 있음에도 운용자산설명서 작성시 이를 10년으로 임의변경해 손실이 발생한 적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이는 이복현 금융감독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과거 20년 동안 20% 이상 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해야 하는데 이를 누락한 것은 의도를 갖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던 사례다.

본사는 판매시스템을 설계하면서 투자자 성향분석 시 거래목적·금융상품 이해도·재산상황 등 6개 항목을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함에도 일부 항목을 누락하거나 점수가 배정되지 않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노후자금 마련, 단기운영목적 등을 거래목적으로 선택한 고객, 원금보존을 희망하는 고객에도 ELS 가입을 권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번 검사결과 다수의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서 주요 판매은행들은 기관·임직원 제재 및 과징금·과태료 처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배상기준안에 따른 배상액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내려질 과징금을 합할 경우 은행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조단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권 홍콩ELS 판매액 15조4000억원 중 최대 8조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평균 배상비율 20~60%을 적용하면 배상금만 1조6000억~4조8000억원 규모다. 개정된 금소법에 따라 불완전판매 금융회사에 판매 금액 중 최대 50%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과징금 부과 여부 및 수준 등은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추후 결정하겠다”며 “소비자피해 배상 등 사후수습 노력에 대해서는 제재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제재 양정시 고려요인의 하나로 감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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