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라이선스, SVB사태로 논의 부적절”..전문가들 쓴소리에 당국도 ‘재검토’

은행권 제도개선 TF 2차 회의..스몰라이선스 도입 집중 검토
한은·금융연구원 “편익 적고 금융안정성 해칠 것” 반대 목소리
SVB사태 이은 뱅크데믹 공포..스몰라이선 등 사실상 재검토 선회

윤성균 기자 승인 2023.03.31 10:45 의견 0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스몰라이선스 제도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자료=금융위원회]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5대 은행의 과점체제를 해소하겠다며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특화은행과 스몰라이선스(인가 세분화)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전세계적인 ‘뱅크데믹(은행+팬데믹)’ 공포가 확산 중인데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전문가와 한국은행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9일 진행된 ‘제2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스몰라이선스 도입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쏟아졌다.

포문을 연 것은 스몰라이선스에 대한 국내외 사례와 시사점을 연구한 한국금융연구원이었다. 금융연구원은 이날 25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스몰라이선스 제도 도입 시 고려할 사항들에 대해 조언했다.

우선 금융연구원은 스몰라이선스의 성격을 임시·제한적인 경우와 영구·제한적인 경우로 나눴다.

영구·제한적인 스몰라이선스의 경우 대표적인 예시로 지급결제전문은행,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의 출범을 들었다.

지급결제전문은행은 은행의 고유업무 중 ‘예금·적금의 수입’과 ‘내국환·외국환’ 업무만 영위하는 은행이다. 예금보험이 적용되고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예금을 무제한 수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자금융업자와 차별화된다.

하지만 지급결제은행의 규모가 기존 은행들에 비해 매우 작을 것으로 예상돼 예금금리 인상 등 경쟁도를 실질적으로 끌어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지적됐다.

또 지급결제 업무만 수행하기 때문에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 건전성 유지 및 서비스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봤다. 지급결제은행이 예금을 채권으로 운용할 시 만기구조에 따라 금리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될 우려도 있다. 최근 SVB의 파산도 금리인상에 따른 채권투자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금융연구원은 “지급결제전문은행은 설립에 따른 소비자 편익은 크지 않은 반면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 건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수신 경쟁 강화로 은행산업 리스크를 증대시키며 설립 유인도 부족할 것”이라며 “스몰라이선스를 통해 설립할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의 경우 중소기업대출에만 집중돼 있을 경우 은행 자산의 경기순응성이 높아져 경기침체 시 은행이 부실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SVB의 경우에도 영업의 쏠림현상이 심해 스타트업 경기가 어려워진 것이 부실화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임시·제한적 스몰라이선스의 경우도 건전성 규제비율을 기존 은행보다 강화해 적용하고 본인가로의 이행계획 및 퇴장계획을 요구하는 등 높은 수준의 규제를 부여할 것을 조언했다.

스몰라이선스 일환으로 은행의 전유물과 같았던 지급결제 업무를 비은행권에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반기를 들었다.

우선 한은은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는 전세계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은행권은 은행과 달리 BIS 자기자본비율 등 은행법에 따른 건전성 규제는 물론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의 적용이 배제되고 예금자보호법 적용도 받지 않음에 따라 규제차익 발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시 소비자가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큰 폭으로 저하될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디지털 뱅크런’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허용은 수신 및 지급결제에 특화된 사실상 ‘내로우뱅킹’ 도입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면서 “특히 SVB 사태, 부동산PF 등과 관련해 결제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은은 소규모 특화은행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터넷은행 5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은행업의 불안정성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완전경쟁 형태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차별화되지 않는 신규 은행을 추가하는 것은 일정 시점 이후 다시금 과점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 입장에서도 5대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있지만 글로벌 은행권 위기와 맞물리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이날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스몰라이선스 도입 여부에 대해 “금융소비자 편익 증대와 경쟁촉진 뿐 아니라 금융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필요가 있다”며 “스몰라이선스 도입 여부와 도입방법 등에 대해 국민과 금융권 등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필요가있다”고 말했다.

이는 김 부위원장이 SVB 사태 초기인 지난 16일 이번 사태로 스몰라이선스, 특화은행 등에 대한 논의에 영향이 있지 않겠냐는 지적에 “당초 계획대로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한 발 물러선 태도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SVB 파산에 이은 글로벌 은행권 위기로 기초체력이 튼튼한 국내 시중은행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특화은행 도입 등이 소비자 편익에 도움이 되겠지만 논의 시점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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