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도권 아파트 거주자는 어찌 살라고..‘그림의 떡’ 된 안심전환대출

윤성균 기자 승인 2022.09.16 11:28 의견 0
금융증권부 윤성균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변동금리 대출에서 ‘3%대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안심전환대출 신청 접수가 시작됐지만 우려됐던 창구 대란도 접속 오류도 없었다. 지난 2015년, 2019년 안심전환대출 신청 때 벌어졌던 일대 혼란을 생각하면 어리둥절한 일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마다 다르겠지만 첫날은 비교적 한산했다”며 “뱅킹앱을 통한 접수도 원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신청 대란을 막기 위한 당국과 금융권의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일까. 이번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대비해 대면·비대면 접수처를 늘렸고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공급 회차를 나눴다.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등에서 효과를 본 5부제도 도입됐다. 지난 1·2차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청 프로세스를 대폭 개선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이번에는 분위가 자체가 예전과는 달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청 개시 전 모니터링을 위해 서울 지역 5군데 영업점에 전화해 상담 건수를 확인해 봤는데 5곳 지점에서 단 두 건이 있었다”면서 “지방으로 지역을 넓히면 다를 수 있겠지만 서울 지역에서는 상담 사례 조차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안심전환대출의 흥행부진이 일찌감치 예견됐다. 금리 인상기로 정책금융에 대한 수요 자체는 높지만 이번 3차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자격 요건이 처음부터 까다롭게 잡혔기 때문이다.

우선 부부합산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1주택자만 해당된다. 주택가격도 시세 4억원 이하 주택이어야 한다.

2015년 첫 안심전환대출을 내놨을 때는 소득이나 보유 주택 수와 관계없이 신청이 가능했다. 주택 가격도 9억원 이하로 넉넉하게 책정됐다.

2019년 공급 때는 소득과 주택수 제한이 생겼지만 부부합산소득이 8500만원으로 지금보다 높았던 데다 신혼부부와 2자녀 이상 가구는 1억원으로 상한을 늘려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안심전환대출의 신청 허들이 고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주택 가격 특히 아파트 경우 4억원 아래인 경우는 수도권에서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신청 조건에 해당하는 주택 자체가 적다. 한국부동산원이 전날 발표한 8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5900만원이며 수도권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1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아파트 거주자는 커트라인에서 ‘자동 탈락’하게 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과거 공급 때 발생했던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

2019년 당시 정부는 공급 규모를 20조원으로 잡았지만 2주간 대출 신청 금액이 73조9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주택가격이 낮은 순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다 보니 주택가격 최종 커트라인이 2억7000만원으로 확정돼 절반에 가까운 신청자들이 ‘희망고문’을 당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일반형·우대형으로 구분해 주택 가격에 따라 공급 시점을 나눈 것이다. 올해는 서민층을 대상으로 우대형 안심전환대출 25조원을 우선 공급하고 내년에 일반형 안심전환대출 20조원을 추가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도 “어려운 서민을 위한 정책상품인만큼 무한정 공급할 수가 없다”며 “다만 내년에 여건을 봐서 추가 20조원을 공급할 때 주택 가격 상한을 한 9억원 정도로 높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내년 일반형 안심전환대출도 자격 요건을 낮추더라도 주택 가격 순으로 공급하게 되면 여전히 수도권 아파트 거주자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크다. 대환에 성공한다고 해도 최근 금리 상승세를 감안하면 올해 우대형 금리보다는 더 높은 금리에 갈아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아파트 거주자로서는 타이밍이 아쉽다.

이번 안심전환대출 공급은 저금리 기조와 코로나 사태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계획됐다. 주택구입 차주의 대출이자 등 주거비용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에서다.

정책금융 상품인 만큼 서민층에 우선순위가 돌아가는 것은 맞지만 주택 가격이 기준이 돼버리면 어쩔 수 없는 공백과 역차별이 발생한다. 비싼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고 해서 수도권 주민들이 지방 주민들보다 더 잘 산다는 의미는 아닌데도 말이다.

저금리 기조와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구조도 크게 달라졌다. 내집 마련 기회를 잡기 위한 절박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가계부채 규모는 매달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공급을 계획하면서 달라진 가계부채 구조를 감안해 권역별 공급 물량을 조절하는 등의 정책의 디테일을 높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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