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태광산업이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과 섬유 부문의 극심한 업황 악화에 맞서 화장품·에너지·부동산 분야로의 대대적인 사업 전환에 나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추진한 32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이 절차상 하자로 금융당국의 제동에 걸리면서 계획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태광그룹 본사 전경 (사진=태광그룹)

1조5000억 '올인 베팅'..애경산업 인수전까지 뛰어들어

태광산업은 1일 "올해부터 내년까지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사업 진출과 기존 사업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만 연말까지 1조원 가량을 집행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까지 집행할 투자 규모가 현재 보유 중인 투자가용자금을 크게 초과한다"며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올인' 수준의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투자 대상은 화장품·에너지·부동산개발 관련 기업 인수와 신규 법인 설립이다. 태광산업은 이미 투자 자회사를 설립해 뷰티 관련 기업 투자를 추진 중이며 애경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태광산업은 3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해 사업 목적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새로 추가되는 사업 영역에는 ▲화장품 제조·매매 ▲에너지 관련 사업 ▲부동산 개발 ▲호텔·리조트 등 숙박시설 개발·운영 ▲리츠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투자 ▲블록체인 기반 금융 연관 산업 등이 포함된다.

현금 1조9000억 보유에도 자금 부족..금감원 제동 걸려

문제는 자금이다. 태광산업이 5월 말 기준으로 보유한 현금성 자금은 1조90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자금은 1조원 미만으로 추산된다.

기존 석유화학 및 섬유 부문에 5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고 업황 악화에 대비한 3.5개월치 예비운영자금 5600억원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여기에 석유화학 2공장과 저융점섬유(LMF)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시설 철거와 인력 재배치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24.41% 전량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32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공시에서 인수 대상자를 밝히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1일 태광산업에 대해 '자기주식 처분결정'과 '교환사채권 발행결정' 공시에 대한 정정명령을 부과했다. 정정 사유는 '처분(발행) 상대방 등에 대한 중요한 누락'이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상 상장사는 자사주 처분 시 처분상대방을 이사회에서 결의해야 함에도 태광산업은 처분상대방을 공시하지 않았다"며 "실제 이사회에서 처분상대방을 결의하지 않았다면 교환사채 발행 및 자사주 처분절차 관련 법적 리스크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3년 연속 적자에 주주 반발..법정 다툼까지 번져

태광산업의 실적 악화도 심각하다. 매출은 2022년 2조6066억원에서 지난해 2조1218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손익은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석유화학 업종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회사의 재무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현 정부의 정책을 반영해 자사주를 소각하고 이를 통해 주식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재편을 통해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며 "교환사채 발행을 통한 투자자금 확보는 회사의 존립과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회사 입장에도 불구하고 태광산업의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사들의 위법 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상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주 외의 자에게 교환사채를 발행할 때는 이사회가 거래 상대방과 발행 조건 등을 명확히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 없이 발행을 의결했다는 주장이다.

시장에서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이 교환권 행사 시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를 낸다며 기존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분 희석 우려로 지난달 30일 주가는 11% 넘게 급락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태광산업이 석유화학과 섬유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3200억원이 필요하다며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를 발행하겠다고 하는 이유가 뷰티, 에너지, 부동산 사업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서 "하지만 말뿐이지 그 어디에도 구체적인 계획도 준비도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