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변동휘 기자] 넥슨이 P2E(플레이 투 언) 시장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블록체인 업계가 다시금 술렁이는 모습이다. 자사의 대표 IP(지식재산권) ‘메이플스토리’를 내세워 식어버린 시장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반면 이 분야의 시조격인 위메이드는 국내 거래소 상장폐지에 직면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법적 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미 가격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P2E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제기되는 만큼 해당 시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부호는 계속 따라붙을 전망이다.
넥슨이 출시한 ‘메이플스토리N’ (자료=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공식 X)
■ P2E 문 두드린 넥슨..‘메이플스토리N’ 출격
23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넥슨이 발행한 가상자산 NXPC(넥스페이스)는 26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15일 상장 직후 4912원까지 올라갔지만 일주일 가량이 지난 현재는 비교적 안정화된 모습이다.
NXPC는 업비트 외에도 빗썸과 바이낸스 등 국내외 주요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NXPC의 전체 거래량 중 바이비트와 쿠코인이 각각 38.38%, 17.33%를 차지했으며 바이낸스가 9.48%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를 기축통화로 활용하는 블록체인 게임 ‘메이플스토리N’도 지난 15일 글로벌 시장에 정식 출시했다. ‘메이플스토리N’은 메이플스토리 IP 기반의 NFT 생태계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의 일환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토크노믹스를 적용한 것이 특징으로 지난 2022년 넥슨개발자콘퍼런스(NDC)에서 처음 공개됐다.
업계에서는 국내 게임업계 1위 기업이자 세계적인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넥슨이 P2E 시장에 참전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특히 넥슨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 IP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 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식어버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 A씨는 “넥슨의 대표 IP인 데다 글로벌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메이플스토리’를 활용하는 만큼 이전의 프로젝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라며 “국내에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위믹스PTE 김석환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변동휘 기자)
■ 위기 맞은 ‘선구자’..막판 뒤집기 가능성은
반면 P2E 게임의 선구자였던 위메이드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모습이다. 최근 국내 주요 거래소들이 상장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 탓이다.
회사 측은 가용한 역량을 모두 동원해 이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에 위믹스 거래지원 종료 결정 효력정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한 것이다.
다만 법의 영역으로 문제를 끌고 오는 처방이 효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022년 첫 상장폐지 당시에도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재판부는 거래소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다. 의사결정 과정에 중대한 오류가 없는 한 거래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판례들이 이어져온 만큼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상당수다.
위메이드 측은 이후 추가 성명을 통해 DAXA 측에 의사결정 과정이 담긴 서류들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전문기관으로 지정 받은 정보보호 전문서비스기업의 보안점검 결과 해킹 사고 이후 이행조치에 대해 모두 ‘양호’ 판정을 받았다며 상장폐지 결정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에는 DAXA 소속 거래소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양대 거래소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담합 구조가 형성돼 있고 이로 인해 위믹스의 상장폐지 여부가 사전에 협의돼 공동으로 결정된 정황이 다수 존재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결정 과정에서 기준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현저히 부족했고 소명 기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게 됐다”며 “이번 사안을 단순한 기업 간의 분쟁을 넘어 국내 투자자 보호와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 확립을 위한 공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P2E를 게임 시장의 트렌드로 부각시킨 ‘미르4’ 글로벌 (자료=위메이드)
■ 결국 같은 알맹이..‘근본적 한계’는 여전
위메이드가 직면한 위기와 별개로 일각에서는 P2E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한계가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P라는 껍데기만 달라졌을 뿐 수요-공급 불균형의 딜레마는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아이러니하게도 P2E 비즈니스의 한계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인 환금성에서 기인한다. 유저들의 초점이 환금에 맞춰져 있는 특성상 과잉 공급이 초래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P2E 게임의 주요 시장으로 꼽히는 곳은 동남아나 남미 등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개발도상국이다. 게임 캐릭터 육성을 통한 유희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하는 기존의 게임시장과 달리 이들은 말 그대로 돈을 벌기 위해 P2E 게임을 플레이하는 패턴을 보였다. 아무리 수요처를 다양화하더라도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트래픽은 높아지더라도 재무적 측면에서 게임사에 돌아오는 이득은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미르4’ 글로벌의 경우 최대 동시접속자 140만명을 넘겼던 2021년 4분기에도 일평균 매출은 6억6000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회계기준 부재로 인해 인식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게임 자체의 성과로만 보면 시장의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중소 규모의 동시접속자를 유지했던 게임들 중에서는 서버 유지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가상자산 가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 역시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소다. 가상자산은 근본적으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며 그 가치 역시 큰 폭으로 변화한다. 가상자산 시장 전반의 불황이나 해킹 등 악재들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유저 이탈 역시 가속화되며 가상자산 시세에 하방 압력을 키우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다른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 B씨는 “사실 게임이라는 측면을 놓고 본다면 P2E가 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당시에도 상당수 게임들은 기본적인 유지비용조차 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며 “다양한 사례를 놓고 봤을 때 P2E가 답이 아니라는 결론이 이미 명확해진 측면이 있으며 아이템의 가치를 보존하고 유저에게 소유권을 부여하는 등 명목적인 수준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