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포격 민간인 사망 유족 재심 판결.. "4800만원 배상하라"

김샛별 기자 승인 2019.11.03 12:40 | 최종 수정 2019.11.03 12:45 의견 0
서울고등법원 청사 (자료=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

[한국정경신문=김샛별 기자]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요청한 미국의 포격으로 숨진 민간인의 유족이 재심을 거친 끝에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7부(김종호 부장판사)는 방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4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과거사 사건에 대해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을 위헌이라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법원은 이 결정에 기속력(변경 없이 따라야 하는 결정력)이 있다는 판단도 함께 내놓았다.

방씨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경북 포항의 송골 해변에서 미 해군 '헤이븐호'의 포탄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방씨의 아버지와 동생이 '포항 미군함포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는 결정을 했다. 이에 방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의 결론은 여러번 바뀌었다.

1심은 사격 명령을 내리고 실제 사격을 한 주체가 모두 미군이었다며 한국 정부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2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포항 인근 전선 상황의 특수성을 따진 결과 국군이 피란민 가운데 북한군이 섞여 있으므로 포격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 미 해군의 포격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고심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방씨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16년 파기환송심을 거쳐 확정됐다. 방씨가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소멸시효 기간인 5년을 훌쩍 넘겨 소송을 제기한 만큼 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상고심의 판단이었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 기간이 일정 정도 지나면 권리가 사라진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민법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사정리법 등은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도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가 적용되도록 한다.

방씨의 사건은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또 한번 반전을 맞았다. 당시 헌재는 소멸시효 제도를 규정한 민법 조항을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에도 적용하는 것을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중대한 인권침해가 벌어졌거나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과거사 사건에서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은 일반적인 경우와 근본적으로 달라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결정에 따라 방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헌재의 결정이 '한정위헌'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한정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정위헌은 법률 조항에 대한 법원의 특정한 해석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법률의 일부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일부위헌 결정과 다르다.

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서는 기속력이 없다고 본다. 당시 헌재 결정에 대해 헌재 측에서는 '일부 위헌이 명백하다'고 했지만 법원 일각에서는 이를 한정위헌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실제로 최근 하급심에서는 당시 헌재의 결정이 한정위헌이므로 기속력이 없다는 취지로 해석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방씨의 재심에서도 국가 측은 헌재의 결정이 한정위헌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헌결정 주문의 표현 형식이나 내용·심판대상 등에 비춰 이 결정은 한정위헌이 아닌 일부위헌 결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설령 한정위헌이라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결정은 '법률 해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로 기속력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국가 측은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국가 측이 상고심에서 헌재 위헌결정의 성격을 다시 쟁점으로 꺼낸다면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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