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리대금업자로 전락한 은행권에 거는 마지막 기대

반병희 칼럼니스트 승인 2023.02.21 15:51 | 최종 수정 2023.02.21 17:09 의견 0
반병희 논설고문

오늘 오전 마이너스 통장, 일명 ‘마통’의 연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 전화를 했다.

지난해 평균 5.3%대였던 금리를 기준금리 4.41%에 우대금리2%, 가산금리 1.69%를 보태 8.10%로 올려 적용하겠단다. 갑자기 두배 가까이 이자를 올리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마이너스 통장이라 그렇단다.

마이너스 통장 자체가 대출 개념인데 일반 신용대출과 무슨 차이냐?고 되물으니 알아 듣기 어려운 용어를 섞어 가며 설명을 한다.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수십 조원의 수익을 올리는 손쉬운 장사를 해도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은행이 공공재냐 여부를 놓고 식자들이 논란을 벌일 때도 금융자본주의 자율성 보장 쪽에 손을 들어 줬다.

그런데 막상 내일로 닥치다 보니 이런 논쟁이 한가로운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데 10분도걸리지 않았다.

마이너스통장이든 대출이든 사람들은 사정이 안돼 은행을 찾고, 은행은 적절한 대가를 전제로 돈을 빌려준다. 실물경제가 어려워지고 가계소득이 줄어들면 시민들이 은행을 찾는 횟수는 많아지고 의존도도 커진다. 누구나 용인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진행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문제는 이런 시민들의 절박함을 미끼로 내놓고 터무니 없는 고금리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어제 기자회견을 한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중소기업 16개 단체의 절규도 국내 은행의 약탈적, 수탈 적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은 86%가 담보나 보증서가 있는 안전 대출인데, 은행은 매출이 떨어지면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금리를 올리는 등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영업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은행들은 이런 지적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가?

코로나19와 그에 이은 고금리 행진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겐 절망이 됐고, 은행엔 ‘나 홀로 호황’을 가져다줬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이 3년 새 40%(566조원)나 늘어 작년 말 1969조원으로 불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들의 회원사 300곳을 조사한 결과 작년 한 해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부담하는 평균 대출 금리가 연 2.93%에서 5.65%로 2.72%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폭 2.25%포인트보다 대출 금리를 더 많이 올렸다는 뜻이다.

또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중 5% 이상의 금리 비중이 지난해 11월 83.8%까지 치솟으며 연간으론 28.8%까지 뛰어올랐다.

이는 전년보다 무려 9.6배로 커진 것으로, 9년 만에 최고치다. 은행들이 얼마나 발 빠르게 금리 인상 리스크를 중소기업에 전가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은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5대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 수익은 지난해 50조원에 달해 1년 전보다 8조원 이상 늘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이다. 대출 금리는 시장금리에 연동해 재빨리 올리고, 예금 금리는 마케팅 전략 등을 고려한다면서 천천히 올렸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렇게 얻은 이익으로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임직원들에게 성과급 1조 4000억원을 뿌리고 조기 퇴직자에겐 1인당 6억~7억원의 퇴직금을 얹어 주었다. 성과급의 경우 통상 임금의 300%를 지급하거나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포인트 수백만원어치를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은행들의 가계대출 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 금리 차가 작년 12월보다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칼 대신 ‘은행’이라는 간판만 달았지 아예 날강도 수준이다.

20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 달 즉 올해 1월 국내 은행 19곳 중 15곳의 가계 예대금리 차가 작년 12월보다 더 벌어졌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KB국민은행(1.51%포인트)의 가계 예대금리 차가 가장 컸고, NH농협은행(1.44%포인트), 우리은행(1.07%포인트), 하나은행(1.03%포인트), 신한은행(0.84%포인트) 순이었다.

줄어든 가계 소득과 불어난 이자로 하루하루 버티기도 어려운 서민들로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금융업은 일종의 공적 인프라이고 서민경제를 받치는 공공기관 성격이 강하다.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서 배를 불리는 짓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가파른 금리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국민 대다수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루 아침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쩔쩔매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보라. 지금과 같은 작태가 나오겠는가?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국가 및 서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한다. 이들이 활기를 찾아야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이 붙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서민과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을 이대로 둔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붕괴되고, 은행 또한 함께 망한다는 사실을 은행권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될 경우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지금의 은행 종사들에게 있으며,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과 ‘죽창’의 단죄가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해둔다.

금융 당국도 자율성과 자정 기능을 잃은 은행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금리 상승기때 예대 금리차 확대를 통한 꼼수 돈벌이를 더 이상 하지 못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은행 스스로 자초한 일임을 명확히 해 두면서…

<반병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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