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자율배상 경색 국면 뚫을까..금감원, 배상비율 30~65% 결정

KB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에 30~65% 손해배상 권고
암진단금에 70대 노후자금까지..“적합하지 않은 상품 권유”
금감원 “분조위 결정으로 은행-고객간 원활한 자율조정 기대”
홍콩ELS피해자 모임, 임의단체 설립하고 집단 소송 준비 중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5.14 11:19 의견 0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를 판매해 대규모 손실을 일으킨 5개 시중은행에 최대 65%의 손해배상을 권고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분쟁조정 결정으로 홍콩 ELS 자율배상 작업도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배상비율을 놓고 은행과 투자자간 입장 차가 커 실제로 협상에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14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주요 판매 은행 5곳에 대한 홍콩 ELS 대표사례에 대해 30~65%의 배상비율을 결정했다.

분조위는 대표사례 5건에 대해 검사결과와 민원조사 결과를 토대로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판단했다. 판매직원이 투자권유 단계에서 투자성향분석 등을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등 가입자의 객관적 비춰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또 손실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대상 기간을 20년 대신 10년 또는 15년으로 설정함으로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이 제외되도록 했다. 이로써 손실위험이 축소된 결과를 활용해 안내하는 등 판매시스템 차원에서 투자성 상품 판매시 설명해야 하는 투자위험의 누락이나 왜곡 등이 있었다.

일부 사안에서는 판매직원이 신탁통장 표지에 금액, 이율 등 확정금리를 제공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오인하게 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기재하는 부당권유도 있었다.

분조위는 “5건의 분쟁조정 신청 건에 대해 ELS 분쟁조정기준에 따라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각 투자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을 30~65%로 결정했다”며 “5개 은행별로 모든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설명의무위반사항(20%)과 개별 사례에서 확인된 적합성 원칙 및 부당권유금지 위반사항을 종합해 기본배상비율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 암진단금에 70대 노후자금까지..30~65% 손해배상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40대 A씨는 암 보험 진단금을 정기예금에 예치하려 국민은행을 방문했다가 투자목적, 재산상황, 투자경험 등 정보를 형식적으로 파악한 은행의 주가연계신탁(ELT) 가입 권유를 받았다. 총 4000만원의 ELT 상품 2건에 가입한 A씨는 이중 1900만원의 손실을 봤다.

분조위는 국민은행이 A씨에게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등을 했다고 보고 기본배상비율 30%를 인정했다. 여기에 A씨가 금융취약계층이고 ELS 최초 투자한 점, 예적금 가입목적과 은행의 내부통제부실 책임이 인정돼 30%포인트가 추가 가산돼 최종 손해율이 60%로 결정됐다.

70대 고령자 B씨에 총 6000만원의 ELT 가입을 권유한 신한은행은 투자성향분석 시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답변하도록 유도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고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금지 위반으로 기본배상비율이 최고 수준인 40%로 책정됐고 여기에 내부통제부실 10%포인트, 금융취약계층 5%포인트, 가입인 성명, 서명 누락 5%포인트, 녹취제도 운영 미흡으로 5%가 가산됐다.

다만 B씨가 과거 가입한 ELT에서 지연상환을 경험한 점, 특정금전신탁 매입규모가 5000만원을 넘는 점을 반영해 10%포인트를 차감해 최종 손해배상비율이 55%로 결정됐다.

농협은행의 경우도 70대 고령자 C씨에게 ELT 가입을 권유하면서 투자성향을 부실하게 파악하는 등 공격투자자로 분류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다. 통장 겉면에 확정 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하고 고령자 보호기준 등도 어겼다.

40% 기본배상비율에 C씨가 금융취약계층이고 예적금 가입목적인 점,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과 모니터링콜 부실, 고령자 보호기준 미준수, 가입인 성명·서명 누락 등으로 총 40%포인트가 가산됐다.

다만 C씨가 과거 가입한 ELT에서 지연상환을 경험했음을 들어 5%포인트를 차감해 최종 배상 비율을 65%로 결정했다.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을 통해 ELS에 가입한 사례에 대해서도 30% 기본배상비율에 가산·차감 요인을 반영해 각각 30%, 55%의 손해배상비율이 결정됐다.

■ 자율조정 속도 붙을까..투자자는 집단 소송 준비 중

분조위의 조정안은 제시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조정이 성립한다. 조정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진행된다.

금감원은 조정안 수용과는 별개로 이번 분조위 결정으로 은행별·판매기간별 기본배상비율이 명확하게 공개되면서 은행과 고객간 자율조정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은행은 분조위 결정에 따라 공개된 은행별·판매기간별 기본배상비율을 명확히 적용할 수 있고 은행으로부터 자율배상을 제시받은 금융소비자는 은행의 자율배상안이 분쟁조정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분조위 결정으로 은행의 자율배상에 가속이 붙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도 “분조위 결정이 자율배상 비율 산정에 참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ELS 자율배상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수 가입자들이 불완전판매를 근거로 계약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지난 7일 임의단체인 ‘금융사기예방연대’를 설립하고 은행권에 투자금 100% 반환을 요구하는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온라인 카페와 단체 채팅방을 통해 로펌의 법리적 판단을 받아 소송을 진행할 의사가 있는 투자자들을 모집 중이다. 현재 약 600명이 집단소송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길성주 홍콩ELS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현재 증거를 수집하는 한편 로펌으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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