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은행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은행 점포가 빠르게 사라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규제 강화보다 지역 맞춤형 서비스 확대를 핵심 해법으로 제시해 눈길을 끈다.

4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별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총 91개 점포를 폐쇄했다. 신한은행이 35개로 가장 많은 점포를 폐쇄했고 국민은행 28개, 우리은행 26개로 뒤를 이었다. 하나은행은 2개로 상대적으로 적었고 농협은행은 광주지역에 지점 1개와 출장소 1개를 늘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인천 계양구 사저를 출발하며 주민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도심의 주요 지점까지 대거 폐쇄하며 점포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였다. 신한은행은 폐쇄 35개 중 34개가 지점이었고 우리은행도 26개 중 22개가 지점 폐쇄였다. 반면 국민은행은 지점 폐쇄 없이 출장소만 28곳을 줄였다.

은행들이 제시한 폐쇄 사유는 대부분 ‘점주권 중복’이었다. 특히 반경 1㎞ 이내 동일 은행 점포가 있거나 동일 건물 내 리테일 점포와 기업금융 점포의 통합이 주된 사례다.

이러한 은행권의 점포 축소 흐름 속에서 이 대통령은 규제 강화보다는 금융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공약집을 통해 ‘소외지역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금융 점포 운영’을 제시했다. 대선 라이벌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사전영향평가의 실효성을 확보해 점포 폐쇄 문턱을 높이겠다고 공약한 것과 대비된다.

구체적으로 이 대통령은 도시지역에 디지털라운지, 시니어라운지 등 고객군별 특화점포를 확대하고 농촌과 도서지역에는 찾아가는 이동 점포 운영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디지털라운지는 은행의 주요 창구 업무를 디지털 기기를 통해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무인형 점포를 일컫는다. 디지털데스크(화상상담 창구)와 스마트 키오스크(계좌 개설, 카드 발급 등)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은행 업무의 약 80%를 처리할 수 있다.

시니어 라운지는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특화 점포다. 큰 글씨 메뉴, 쉬운 용어 사용, 보조 지지대 설치 등 고령층의 편의를 높인 점포가 대표적이다.

이동점포는 트럭이나 버스 등 차량에 현금 입출금기(ATM)와 각종 은행 업무 장비를 설치한 이동형 영업점이다. 지점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나 금융 취약계층을 직접 찾아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은행 점포 정책 방향은 현재 은행권에서 추진 중인 전략과 상당 부분 맥을 같이 한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미 고객군별·지역별 특화점포 운영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KB시니어라운지는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의 복지관 등을 매주 순회 방문하는 이동 점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디지털라운지를 전국 77곳에서 운영 중이다. 컨시어지 직원이 상주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등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은행은 비수도권 지역 시니어 고객들을 위한 이동점포 ‘어르신을 위한 움직이는 하나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창구, 포터블 단말기, 카드 즉발기 등이 탑재된 차량으로 매주 1회 지역 복지관을 방문해 ▲통장개설 및 재발행 ▲체크카드 신규 및 재발급 ▲연금 수령 및 입출금 업무 등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서울 효심 영업점 등 3개 지점에 ‘시니어플러스 영업점’을 개설했다. 노년층을 위한 원금 보장형 상품 위주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고령층에 친화적인 ATM을 배치하고 노년층 모임 장소인 ‘사랑채’를 만들어 놓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점포 폐쇄 자체를 막는 것보다 남은 점포의 서비스 질을 높이고 지역별·고객군별 맞춤형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이라면서 “점포 폐쇄로 금융 소비자 불편함이 없도록 대체 수단 운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