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1조원대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의 승부처가 가격에서 안전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1차 입찰에서 삼성SDI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면 2차에서는 화재·설비 안전성과 계통 안정성, 국산화 기여도를 촘촘히 따지는 ‘안전 잣대’가 배터리 3사의 명암을 가를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전력거래소는 12일 ‘2025년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제안서와 사업계획서 제출을 마감했다. 총 540MW(육지 500MW·제주 40MW), 사업비 약 1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이번 사업은 13~16일 증빙서류 접수를 거쳐 2월 중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준공 기한은 2027년 12월이다. EV 부진으로 생산 여력이 남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향후 몇 년간 공장 가동률을 떠받칠 ‘핵심 내수 물량’으로 꼽힌다.​

지난해 진행된 1차 입찰에서는 평가표의 무게중심이 가격과 국산화에 쏠려 있었다. 평가 기준은 가격 60%, 비가격 40%였고 국산 부품 사용 비중과 국내 생산 기반을 포함한 산업·경제 기여도 항목이 비가격 평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 구조 속에서 삼성SDI가 전체 물량의 70%를 훌쩍 넘는 수주고를 올리며 사실상 ‘싹쓸이’에 가까운 결과를 냈다. 나머지 물량은 LG에너지솔루션이 가져갔다. SK온은 1차에서 의미있는 실적을 내지못했다.

2차에서는 판이 달라졌다. 가격 비중은 50%로 낮아지는 대신 비가격 비중은 50%로 확대됐다. 그 안에서도 화재 및 설비 안전성, 계통 연계성, 산업·경제 기여도 배점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비가격 50점 가운데 화재 및 설비 안전성이 25점을 차지한다. 이 중 배터리 자체 화재 안전성 점수는 6점에서 11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ESS 설비 구성과 배터리 화학계 선택, 열폭주 확산 방지 구조, 비상전원·소화 설비, 정기 점검·온라인 진단 체계까지 입찰 단계에서부터 세밀하게 검증받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안전 잣대’ 강화의 배경에는 그간 국내에서 발생한 ESS 화재와 정부 대책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원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셀·모듈·랙 단위 격벽, 감압·배연 설비,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설치 후 정기 점검 및 온라인 진단 의무화 등 안전 강화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업계에서는 “이번 2차 평가표는 그동안 사후 대책으로 존재하던 안전 기준을 아예 입찰 단계의 채점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배터리 3사 전략도 달라졌다. 1차에서 앞서 나간 삼성SDI는 열전파 차단(No TP) 기술을 적용한 NCA 각형 셀과 일체형 ESS 솔루션을 내세워 화재·설비 안전성 항목에서 우위를 지키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전면에 내세워 ‘안전+국산화’ 점수 끌어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 업체 가운데 유일한 LFP 양산 경험이 있다. 충북 오창 공장에 ESS용 LFP 라인을 구축하며 화재 전이를 최소화하는 설계로 배터리 자체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SK온은 충남 서산 공장 일부 라인을 ESS 전용 LFP 생산으로 전환해 국내 최대 수준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물량 대응력과 열안정성을 앞세워 1차와 다른 결과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바나듐이온배터리(VIB) 기업 스탠다드에너지와의 협력을 통해 장기 안전성을 강조하는 행보도 병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달라진 평가표를 두고 “입찰이 사실상 안전성 경쟁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1차가 ‘삼성SDI로 쏠린 가격·국산화 라운드’였다면, 2차는 각사가 어떤 수준의 안전 설계와 점검·검사 체계를 증명하느냐를 보는 무대”라며 “값싸게 깔고 나중에 보수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수주가 힘든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EV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2차 결과는 배터리 3사의 국내 사업 전략과 향후 ESS 투자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