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태광그룹이 석유화학 장기침체 탈출 카드로 공격적 M&A에 나섰다. 올 4월부터 6개월 새 1조7000억원 규모 인수전 4건을 동시 추진하며 사업구조 재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18일 태광산업에 따르면 지난 12일 미국계 사모펀드 TPG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케이조선 예비 인수의향서를 공동 제출했다. 유암코·KHI가 보유한 케이조선 지분 99.58%와 회사채가 매각 대상이다. 본입찰은 내년 1월로 예정됐다.
(왼쪽부터) 애경그룹 사옥,태광그룹 흥국생명 빌딩(사진=각 사)
태광 관계자는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은 맞다"며 "투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단순 지분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고 밝혔다.
태광이 케이조선 인수에 공을 들이는 배경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 특수가 있다. 조선업계가 상반기 부진에서 벗어나 하반기 들어 잇단 수주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실제로 케이조선은 올해 1조2000억원 상당 15척을 수주하며 2년치 물량을 확보했다. 이는 작년 11척, 8900억원 규모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케이조선은 마스가 프로젝트 참여가 가능한 중소형 조선사로 평가받는다.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태광의 M&A 행보는 가속화 되고 있다. 올해 애경산업(4700억원)·이지스자산운용(5000억원 이상)·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2500억원) 인수에 잇따라 참전했다. 뷰티·조선·부동산·호텔까지 전방위 확장 전략이다.
주력 석유화학 사업의 부진이 배경이다. 태광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최근 3년간 영업손실 935억원을 기록했다. 올 1월 울산 석화2공장 프로필렌 라인을 가동 중단했고 7월엔 중국 스판덱스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유태호 태광산업 대표는 지난 9월 주주 서한에서 "회사는 도태 또는 도약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신규 포트폴리오 구축 방침을 밝혔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애경산업 지분 63.12%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티투프라이빗에쿼티·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내년 2월 잔금 4465억원을 지급한다.
흥국생명은 이달 부동산 자산운용 1위 이지스자산운용 본입찰에 참여했다. 기업가치 8000억~1조원대로 인수에 5000억원 이상 필요하다. 흥국리츠운용은 8월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호실당 6억원 넘는 최고가 2500억원을 제시했으며 태광산업이 1000억원 투자 확약서를 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애경산업과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는 사업구조 재편과 그룹 차원의 다각화 전략"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자금이다. 반년 사이 4건 M&A에 뛰어들면서 자금 조달이 과제로 떠올랐다. 태광산업 9월 말 유동자산은 2조5800억원이지만 현금성자산은 4900억원에 그친다. 4건 인수 완료 시 1조7000억원 이상 필요해 자금 부족이 불가피하다.
업계는 태광이 자사주 교환사채 3200억원 재추진이나 서울·부산 소재 부동산 매각으로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태광산업은 이달 내 자사주 처분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대규모 M&A와 맞물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복귀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전 회장은 최근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되며 그룹 일선에 복귀 신호를 보냈다.
재계는 굵직한 인수건들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 이 전 회장이 전면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 2대 주주 트러스톤은 올 3월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공식 요구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잉여금 4조원 넘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은 5000억원 수준"이라며 "교환사채 3200억원 재추진과 보유 부동산 매각으로 7000억~8000억원 확보 가능하지만 나머지 1조원은 금융권 차입 불가피해 인수 후 통합 시너지 창출이 급선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