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MBK파트너스는 "해외 매각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해왔다. 이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MBK의 약속을 믿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사모펀드의 구조적 특성상 단기 수익 추구를 외면할 수 없다. 특히 중국투자공사가 참여한 MBK 6호 펀드가 고려아연 같은 국가전략산업 핵심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본질적 특성과 과거 사례를 보면 직접적인 매각 대신 다양한 우회 전략을 통해 실질적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MBK의 공식 약속을 살펴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다. 영풍-MBK 경영협력계약상 10년간 지분 처분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이것이 모든 형태의 실질적 지배권 이전을 막을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모펀드의 구조적 한계다. MBK는 2005년 설립 이후 52개사에 투자해 평균 5.6년 보유 후 매각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투자자들의 수익률 요구, 펀드 만료 압박, 차입금 상환 등이 모두 '매각 압박' 요인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중국 자본과의 연결고리다. 지난 3월 시민단체 주최 토론회에서 김병준 강남대 교수는 "MBK 6호 펀드에는 중국투자공사(CIC)가 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빠른 투자금 회수를 지향하는 MBK 입장에서는 고려아연을 인수하려고 혈안이 된 중국계 기업에 비싼 가격으로 되팔 수 있는 유인이 크게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아연뿐만 아니라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반도체, 이차전지, 원자력발전 필수 소재를 생산하는 국가전략산업의 핵심 기업이다. 중국에 고도의 제련기술을 빼앗길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직접 매각하지 않고도 실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우회 전략들도 우려된다.
첫째 단계적 지분 희석 전략이다. 외국 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합작투자 명목으로 지분을 일부 이전한 뒤 점진적으로 경영권을 실질 이전하는 방식이다. 특히 중국투자공사가 이미 MBK 펀드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현실적이다.
둘째 자산 담보 및 금융 종속화 우려다. 온산제련소나 해외 법인을 외국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거나 외국 투자자 대상 회사채 발행으로 사실상 종속될 가능성이다. 핵심 시설을 매각한 후 임대 사용하는 리스백 거래도 소유권 이전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셋째 사업 분할을 통한 우회 매각 가능성이다. 핵심 기술은 안 팔지만 주변 사업은 판다는 논리로 호주 자회사 SMC나 캐나다 TMC 지분(2025년 6월 8500만 달러에 5% 인수), 이차전지 소재 등 미래 성장동력을 별도로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기술 유출의 다양한 경로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투자한 회사의 기술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경우, 기술을 다른 기업으로 이전하도록 강요하는 경우, 회사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새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 등을 우려하고 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안티모니 출하장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의 중요성은 최근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1분기 안티모니 매출 596억원으로 전년 대비 5배 성장을 기록했다. 6월 15일 안티모니 20톤을 미국으로 첫 직접 수출하며 올해 100톤, 내년 240톤으로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안티모니는 철갑 저격탄 제조용 합금, 반도체 제조업 및 군사 전자장비, 항공우주 분야에 사용되는 핵심 전략광물이다. 고려아연은 순도 99.95%의 고순도 안티모니 생산 기술을 갖춘 국내 유일 기업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SEC는 2024년 8월 사모펀드 매니저들에 대한 새로운 공시 규칙을 승인해 분기별 보고서 제출, 제3자 평가, 연간 감사 등을 의무화했다.
신용평가기관들도 기업 인수 후 세일앤리스백을 활용해 부채를 조정한 경우 리스크를 평가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다. 니폰스틸의 US스틸 인수 과정에서도 고용 유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조건부 승인했고 영국 ARM의 엔비디아 매각 시도는 정부 개입으로 무산된 바 있다.
현재 정부는 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 제조기술과 헤마타이트 공법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그러나 MBK 펀드 6호의 외국계 자금 비중이 80% 이상이고 중국투자공사까지 참여한 상황에서 이런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MBK의 약속은 공허한 말장난이 될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모펀드에게 국가의 핵심 자산을 맡기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중국 자본이 개입된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한다면 언젠가는 다양한 우회 전략을 통해 우리의 전략적 자산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양할 것이다. 국가핵심기술 지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이야말로 단호한 결단으로 국가 핵심 기술을 지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