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이더랩 대표


최근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RWA(실물자산 토큰화)다. JP모건이 “고객의 99.9%가 전통 자산의 토큰화에 대해 질문한다”고 밝히고, 블랙록이나 KKR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직접 자산 토큰화 실험에 뛰어들면서 RWA가 마치 다음 디지털 금융 혁명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자산을 토큰화한다는 개념 자체는 매우 매력적이다. 부동산, 채권, 미술품, 저작권 등 유동화가 어려운 자산을 소액 단위로 분할해 투자하고, 이를 블록체인 위에서 쉽고 투명하게 거래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은 투자 시장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다. 특히 Ondo Finance, Centrifuge, Propy, RealT 같은 기업들은 미국 국채, 부동산, 중소기업 대출, 미술품 등 다양한 실물자산을 블록체인에 옮겨오며 유동성과 수익성 확보라는 양날의 검을 시험하고 있다.

Ondo Finance는 미국 국채를 토큰화하여 연 4.5% 이상의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 블랙록과 협력해 BUIDL 펀드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MANTRA(OM), Hedera(HBAR), Maple Finance 등도 부동산, 채권, 기업 대출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RWA 모델을 실험 중이다. 금 기반 RWA인 PAX Gold, Tether Gold는 실물 금과 연동된 토큰을 통해 안정적 자산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전 세계 RWA 시장 규모는 170억~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글로벌 컨설팅사들은 2030년까지 16~30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RWA는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기관투자자 유치와 탈중앙 금융(DeFi)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또한 RWA는 스테이블코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토큰화된 자산의 유동성과 결제를 담당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향후 RWA가 본격적으로 금융시장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이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미국, 유럽,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 및 RWA 관련 규제를 정비하며 제도권 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블랙록,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전통 금융기관들도 RWA와 스테이블코인 결합 모델을 연구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RWA가 실제로 기존 투자 시장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으로 작동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째는 법적 인프라다.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리는 기술은 이미 충분히 성숙했지만 법적 권리 이전과 관련된 실물 자산의 소유권 증명은 여전히 오프체인에서 발생한다. 즉 NFT나 토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해당 실물 자산에 대한 법적 권리를 완전히 획득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투자자가 실제로 어떤 권리를 보장받는지 모호한 상황을 낳는다. 예를 들어 토큰화된 부동산을 샀다고 해도 등기 이전 등 실질적 소유권 이전은 여전히 기존 법체계에 의존해야 한다. 국가별 법률 차이와 분쟁 가능성도 상존한다.

둘째는 유동성과 시장 인프라 문제다. RWA는 이론적으로 유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투자자가 보유한 자산은 여전히 현금화가 어렵다. 특히 부동산이나 미술품처럼 평가와 유통이 복잡한 자산은 유동화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 그만큼 토큰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프로젝트는 거래소 상장과 유동성 풀 제공 등으로 시장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글로벌 표준화와 신뢰 구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셋째는 제도화 속도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국내에서도 STO(증권형 토큰) 관련 규제와 사업 모델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금융위원회는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 장치나 발행·유통 시장의 투명성 확보 등에서는 갈 길이 멀다. 현재로서는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한 제한적 시범사업만이 허용되는 상황이다. 자본시장법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틀이 완비되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사업화가 어렵다. 글로벌 시장 역시 규제의 불확실성과 국가별 차이로 인해 대규모 기관투자자 유치에는 제약이 많다.

넷째는 일반 대중의 이해 수준이다. RWA는 매우 복합적인 금융 구조를 가지며 자산 토큰이 어떤 실물 자산과 연동되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다. 블록체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의 기회보다 리스크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RWA 관련 프로젝트 중 일부는 정보 부족, 구조적 불투명성, 가격 변동성 등으로 투자자 신뢰를 얻지 못해 시장에서 외면받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RWA가 장기적으로는 분명 주목할 만한 금융 혁신이지만 지금 당장 투자자들이 달려들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특히 기술과 제도, 투자자의 이해라는 세 박자가 고루 맞지 않으면 디지털 자산 생태계는 또 다른 ‘묻지마 투자’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코드화 작업이 아니라 그 자산에 얽힌 법, 세금, 시장,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모두 담보해야 하는 고차원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거두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RWA가 진정한 대안 금융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기술적 흥분이 아닌, 제도적 준비와 사회적 합의를 먼저 만들어가야 한다. 그게 바로 RWA의 진짜 기반이다. 혁신의 속도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제도의 성숙과 사회적 신뢰라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야말로 RWA가 진정한 금융 혁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