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이더랩 대표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은 디지털 자산, 그중에서도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역동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블랙록, 피델리티와 같은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고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며 제도권 금융 시스템 내로 적극적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를 넘어 미래 금융의 핵심 축으로 디지털 자산이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명확한 증거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은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혁신의 물결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행보는 단연 두드러진다. 2024년 초, 블랙록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받아 현물 비트코인 ETF인 ‘iShares Bitcoin Trust(IBIT)’를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이는 전통 금융의 거인이 디지털 자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IBIT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자금 유입을 기록하며 단숨에 세계 최대 비트코인 펀드로 자리매김했고, 현재 운용자산은 100억 달러를 훨씬 넘어섰다. 블랙록은 유럽 증시에도 비트코인 기반 ETP를 상장시키며 글로벌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혁신적인 디지털 자산 투자 기업으로 변모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20년부터 전략적으로 비트코인을 기업 자산으로 대거 매입하기 시작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현재 21만 4000개가 넘는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의 약 1%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다. 이들은 기업의 핵심 전략과 정체성을 '비트코인 중심'으로 재정립하며 디지털 자산에 대한 확신과 실행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피델리티의 빠른 디지털 자산 시장 적응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피델리티는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암호화폐 보관 서비스에 이어 ‘Fidelity Crypto’ 플랫폼을 통해 개인 투자자에게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현물 비트코인 ETF인 ‘Fidelity Wise Origin Bitcoin Fund(FBTC)’를 통해 투자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레이스케일은 암호화폐 전문 자산운용사다. ‘Grayscale Bitcoin Trust(GBTC)’를 중심으로 다양한 디지털 자산 기반 신탁 상품을 운용 중이다. GBTC는 오랜 시간 동안 미국 내 대표적인 비트코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최근 ETF 전환도 추진 중이다. 제도권 투자 접근성을 높이고 암호화폐 시장에 안정성과 신뢰를 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현실은 정체돼 있다. 높은 IT 인프라와 투자 열기에 비해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은 여전히 규제 중심적이며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사 등 주요 기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기반도 부재하다. 이로 인해 국내 투자자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투자 기회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자산이 글로벌 금융의 핵심 자산군으로 부상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혁신을 외면하고 과거의 프레임에 갇힌다면 그 대가는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핀테크 산업의 발전 동력을 상실하고, 해외 자본과의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암호화폐 시장이 안고 있는 위험 요소는 분명하다. 변동성, 보안, 불법 사용 가능성 등은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그렇다고 혁신의 흐름 자체를 막는 것은 근시안적인 선택이다. 글로벌 금융 강국들은 이미 디지털 자산을 품에 안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늦기 전에 합리적인 규제와 교육, 인프라 확충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해야 할 때다.

디지털 자산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 아니면 외면하고 뒤처지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혁신을 외면한 대가는 결국 도태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지금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