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인 ‘배드뱅크’(장기연체채권 처리 기구) 설립이 본격화된다. 이번 배드뱅크 정책으로 은행권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시장에서는 실제 은행업권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위원회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중심이 되는 상법상 주식회사 형태의 배드뱅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중심이 되는 상법상 주식회사 형태의 배드뱅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이번 배드뱅크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무담보 개인채권을 주요 매입 대상으로 하며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관련 예산 4000억원을 포함한 2차 추경안을 편성했다. 이는 예결산특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표결을 거쳐 확정된다.
정책이 시행되면 약 113만명의 장기 연체자가 총 16조4000억원 규모의 채무조정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자는 별도 신청 없이 정부와 금융사의 데이터를 통해 자동 선정 후 개별 안내와 동의 절차를 거쳐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총 재원 8000억원 중 절반인 4000억원 가량을 부담하게 된 은행권은 정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반복되는 출연 요구에 대한 피로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 상생금융 프로그램 등으로 이미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경험한 은행권으로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방식의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배분 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분담 규모를 언급하긴 이르다”면서도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 보유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재원의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구조에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배드뱅크 출연이 은행의 펀더멘털에 미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은행, 카드사 등 제도권 금융회사는 연체 기간이 길어지면 관련 규정에 따라 충당금을 100% 적립하거나 상·매각을 통해 건전성을 관리한다”며 “실질적으로 7년 이상 된 채권은 이미 회계 장부상 손실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아 이번 매각으로 인한 추가 손실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오히려 원금의 약 5% 수준에서 채권을 매각할 경우 소액의 매각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나신평은 매입 대상 채권 규모가 1조1000억원인 은행권의 경우 약 550억원의 매각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은행, 카드, 저축은행 등의 여신금융회사는 연체채권을 지속적으로 상·매각해 배드뱅크 정책 대상 채권의 규모가 크지 않고 이미 높은 수준의 충당금을 적립해 크지 않은 규모의 채권매매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며 “배드뱅크가 추진되더라도 단기적으로 금융업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권이 부담할 4000억원은 시중은행당 약 300억~400억원 수준으로 연간 순이익 규모를 고려하면 크게 부담이 가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7년 이상 연체된 여신은 대부분 상각 처리했을 것이므로 매각 관련 손실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도 “민간 금융회사 부담이 약 4000억원 수준으로 설정돼 우려보다 부담이 크지 않다”며 “향후 부실 차주의 이자상환 능력 회복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