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배상안 마련, 금감원 권한 맞다"..하지만 월권 논란 거센 이유

금감원, 이례적 입장 자료..“분쟁 조정 금감원 권한”
현장검사 중 은행권에 자율배상 압박..“배임 이슈로 불가”
통상 분조위서 배상안 마련하는데..“공적 절차 전 배상 바람직”
금감원 배상안, 투자자 눈높이 맞출까..재가입자 책임분담 관건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2.21 11:26 의견 24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 선제적인 배상안 기준 마련에 나섰다가 월권 논란에 부딪혔다. 절차상 아직 현장검사 결론도 나오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은행권의 선제적인 자율배상까지 압박하면서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금감원의 계획대로 내달 초 배상안 기준이 마련된다고 해도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홍콩 ELS 가입자의 피해 구제를 위해 금감원이 손실 배상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금융당국이 홍콩 ELS 배상안 기준을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에 정면 반박한 것이다.

금감원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금융소비자보호에 관련법률(이하 금소법) 제33조와 제36조 등이다.

금소법 제33조는 분쟁조정기구에 관한 내용으로 금융 관련 분쟁의 조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금감원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둔다고 정하고 있다.

제36조는 분쟁조정 절차에 대한 내용이다. 금융소비자 및 이해관계인은 금융 관련 분쟁이 있을 때 금감원장에게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금감원장은 이를 분조위 회부 전에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금감원장이 홍콩ELS 판매사를 상대로 자율배상을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는 지적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금감원은 홍콩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현장검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은행의 선제적 자율배상을 언급하며 금융권을 압박 중이다. 지난 5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지급 형태의 자율배상을 은행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선지급이 이뤄진 라임CI·디스커버리·옵티머스펀드 등과 달리 홍콩 ELS는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운용이나 설계 과정에서 사기행위도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홍콩 ELS의 경우 만기 도래로 손실이 확정된 비중이 아직 적다. 대다수 상품이 아직 만기도 도래하지 않았는데 선배상에 나섰다가는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는 투자자 손실에 대한 사전·사후 보전을 금지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검사가 마무리 돼야 그 이후에 자율 배상안 등이 구체화될 수 있다”며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금융분쟁의 배상절차는 금감원의 검사가 완료된 뒤 불완전판매 혐의가 입증되면 금융사에 대한 제재와 분조위의 배상기준안이 마련됐다. 금융사의 선지급이 이뤄진 시점도 통상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다.

반면 홍콩 ELS와 관련해서는 금감원이 현장검사와 배상안 마련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검사를 마치고 이르면 다음달 초에 책임분담 기준안을 발표하겠다는 게 금감원의 계획이다.

앞선 사모펀드 등 사례에서 현장검사 이후 분조위 절차를 걸쳐 배상기준안을 마련했던 것과 비교하면 배상안 발표 시점을 크게 앞당겼다. 금소법에서 분조위 회부 이전에 금감원장이 당사자간 합의를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렇게 나온 배상기준안이 100% 원금 보장을 요구하는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냐는 점이다. 책임분담 시 과거 투자 경험이 주요한 차감요인으로 작용하는데 홍콩 ELS의 경우 재가입자 비율이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재가입자의 과거 이익을 손실에서 공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금감원은 19일 설명자료를 통해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 등을 바탕으로 홍콩 ELS 가입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앞선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DLF 사례를 떠올려 보면 배상기준안이 마련된다고 해서 홍콩 ELS 사태가 단기간에 수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홍콩 ELS 상품의 만기가 올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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