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 아닌 1인 가구 역차별"..‘결혼 안 하면 원룸 살아야 하나’ 성토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가구별 전용면적 제한조항..1인 가구 전용 35㎡ 이하만
국회 ‘임대주택 면적을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 3만명 넘게 동의
전문가들 “민간 임대시장 안정성 도모해야”

박세아 기자 승인 2024.04.23 09:07 의견 0
경기광주역 행복주택 500세대 (자료=광주시)

[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에 가구별 전용면적 제한조항을 적용하면서 1인 가구 역차별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가구원 수 별 전용면적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구원 1명은 전용 35㎡ 이하 ▲2명은 전용 25㎡ 초과~44㎡ 이하 ▲3명은 전용 35㎡ 초과~50㎡ 이하 ▲4명은 전용 44㎡ 초과다.

기존에는 1인 가구에만 전용 40㎡ 이하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규칙을 손보면서 1인 가구 공급면적을 5㎡ 낮췄다. 이와 함께 2~4인 가구 면적 규정이 신설됐다.

이에 상당수 1인 가구가 이와 관련 불쾌감을 공식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국회 국민동원청원에는 ‘임대주택 면적을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에 23일 오전 기준 이미 3만명이 넘게 동의를 표하고 있다.

공급면적 35㎡는 평수로 따지면 10평이다. 사실상 원룸만 가능한 형태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한 30대 청년은 “이번 개정안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혼자 살면 좁은 데 살아도 된다는 것이냐”라며 “임대주택은 주거 안정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출산율과 혼인율이 낮다고 이런 방식으로 결혼 유인책을 만드는 게 실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 안 하면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을 만들려는 것이냐”며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주거의 질은 포기하고 살라는 말로 들린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행복주택 지원의향자는 “이미 공공임대주택은 자녀 수에 따라 가점이 있다”며 “여기에 면적까지 넓히면 지나친 특혜로 느껴진다. 최근 청약도 혼인가구에 유리하게 변경된 상황인데 혼인을 굳이 원하는 않는 1인가구 주거의 질은 누가 담보해 줄 것이냐”고 성토했다.

서울리츠 행복주택 조감도 (자료=SH공사)

상황이 커지자 국토교통부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수가 한정적이고 저출산 해결이라는 국가적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면적 제한 기준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임대 정책에 불을 붙인 것은 문재인 정부 때다. 문 정부는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이 주택 공급을 확대했다. 관련 예산도 로드맵이 발표된 2017년 8조7000억원에서 2022년에는 약 20조원에 가까웠다.

또 민간임대에 비해 가격은 낮지만 공공임대주택의 품질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주거품질 개선에도 힘썼다. 이의 일환으로 국민평형이라고 일컬어지는 85㎡, 30평형대 임대주택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저렴한 가격에 주거안정을 도모하려는 많은 수요자가 생겼지만 이후 청년과 신혼부부 등까지 대상이 점차 확대되면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공공임대 특성상, 임대료를 민간처럼 상승시키지 못하는 구조다 보니 모든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면적을 줄이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공공에 의한 공급은 질보다는 양적 목표가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입지가 좋지 않거나 건물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져도 매입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1인가구뿐만 아니라 2인가구 이상도 불만을 지속해서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공임대가 모든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임대 시장이 이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전세시장이 불안도가 높아짐에 따라 월세시장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가 아닌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전문가는 “많은 주거 물량을 받아내기 위해서 시장에 감당 가능한 물량이 확보돼야 한다”며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거나 보유세나 양도세 등 감면을 통해 세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민간 임대시장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결과적으로 수급 균형이 맞아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며 “이 균형을 위해 제도가 일관성 있게 유지돼야 한다. 결국 시장에 신뢰를 줘야 하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짚었다.

이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당면한 부동산 시장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다 보니 정책이 짧은 시간 내 자주 바뀌면서 다주택자의 경우 당장 세금이 중과돼도 매물을 내놓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시장이 불안할수록 내 집 마련에 대해 수요는 커지지만 보유세나 거래세가 모두 중과되는 정책 하에서는 집주인 입장에서 매물을 정리할 수 있는 출구가 막혀 잠금 현상이 생기고 결국 가격이 오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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