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부동산 사각지대 '원룸 관리비'..꼼수로 탄생한 '제2의 관리비'

전월세상한제 시행되자 집주인, 관리비로 전월세 증가분 상쇄
관리비 세부내역 공개 지침 내려오자, 또다른 관리비로 세입자 울려

박세아 기자 승인 2024.03.11 11:12 의견 0
전월세신고제 시행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월세요? 나라에서는 5% 증액 제한했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느끼는 건 똑같아요.”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11일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관리비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집주인이 관리비를 기존 10만원에서 13만원으로 올려달라는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1년 전 7만원에서 3만원 인상된 가격을 내고 있었던 A씨는 다시 1년 만에 내야 할 관리비가 3만원 인상됐지만 알아본 결과 법적으로 위반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관리비 문제는 부동산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지속적인 고민거리다. 지난 2020년 7월 부동산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관리비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임대차 3법 중 '전월세상한제'의 존재 때문이었다.

정부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집주인들이 1년에 전세 보증금과 월세액을 5% 초과 증액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만 이 제도를 비켜가기 위해 집주인들은 세입자에게 관리비를 더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해왔다.

예컨대 전세금이 2억인 빌라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 금액에서 5% 증액하면 2억1000만원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부동산 임대시장 상황을 고려해 전세금이 많이 올라 빌라 가치가 주위 시세와 비슷하게 2억1100만원이라는 계산을 한다. 이에 집주인은 법 제한으로 올리지 못하는 나머지 100만원을 월세로 환산하고 다시 관리비 명목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시세 상승분을 반영하는 꼼수를 써왔다.

껑충 뛴 대학가 원룸 가격 (자료제공=연합뉴스)

■정부의 대응, 이어지는 집주인의 꼼수

이와 같은 꼼수로 전월세상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정부가 실제 대응책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는 ‘관리비 사각지대 해소 및 투명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통해 관리비 ‘의무’ 공개 대상을 기존 100가구 이상에서 50가구 이상 공동주택으로 강화했다.

이에 네이버, 직방 등 부동산 광고 플랫폼 상에서도 관리비 세부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바뀌었다. 관리비 내역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으면 매물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당 매물의 세부 관리비 내역을 세입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상황이 개선된 것이다.

또 50세대 미만 소규모 주택도 10만원 이상 관리비가 발생할 때는 세부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바뀌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 ‘소규모 주택 관리비 투명화 방안’으로 관리비가 10만원 이상 정액으로 부과되는 경우관리비 항목별로 세부 내역을 입력하고 광고하도록 ‘중개대상물 표시 광고 명시사항 세부기준’을 개정했다. 시행일은 지난해 9월 21일부터 계도 기간은 오는 31일까지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대응에 또다시 다른 방식의 꼼수가 시장에서 생겨나면서 세입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부 집주인들이 관리비를 이중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정부의 감시망을 피하기 시작했다. 관리비 세부내역을 공개해야 하지만 개인이 검증하기 불가능한 항목을 이용해서다.

가스나 수도, 인터넷, TV 등은 관련 기관에 세입자들이 마음 먹으로 확인하기 쉽다. 하지만, 청소비, 경비, 인건비, 승강기 유지비 등 일반관리비 항목이나 기타관리비 항목은 세입자가 구체적으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앞서 집주인에게 3만원 관리비 인상통보를 받은 A씨도, 장기수선금 명목으로 3만원 인상을 고지받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꼼수를 부리면서도 일부 집주인들은 상생 임대인 혜택을 받는다. 직전 계약 대비 전월세를 5% 이내로 올린 집주인들은 양도세 비과세를 위한 실거주 요건을 면제받을 수 있다.

서울 빌라촌 (자료=연합뉴스)

■ 꼼수 판치는 현장, 세밀한 정부 대책 필요

실제 현장에서도 일부 공인중개업자들은 집주인들의 꼼수를 종종 목격하는 상황이다.

예를들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빌라가 있다. 기존 세입자가 살다가 계약만기가 돼 퇴거하고 다시 집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전월세상한제에 따르면 최대 올릴 수 있는 월세는 52만원까지지만 임대인들은 보증금은 그대로 둔 채 원하면 60만원도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 월세지만 나머지 8만원을 기타관리비 명목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계약서 상에는 '1000에 월세 52만원'으로 기재되지만 별도 특약 사항을 기재해서 수선관리비 명목으로 기존 부과됐던 관리비 이외 제2의 관리비를 발생시키는 셈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법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할 수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사회 초년생들은 고가의 대단지 아파트보다 소규모의 빌라나 주택으로 거주를 많이 하게 된다”며 “아파트처럼 관리비를 심사하고 의결하는 입주민단체도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관리비 항목이 공개돼도 개인이 세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전월세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부담이 관리비인 만큼 조금 더 세밀한 정부 대책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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