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자율배상 물꼬 텄지만..가입자 배상비율 합의는 ‘다른 문제’

우리은행 시작으로 이번주 잇달아 이사회..4월부터 배상 협의
불발시 분조위→소송 수순 장기화..“배상비율 협의 과정 거칠 것”
과거 자율배상 합의 사례 살펴보니..2~3년간 합의 지지부진
전액 배상 목소리 낸 홍콩 ELS 가입자들..29일 국민은행 본점 집회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3.25 11:52 의견 5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관련 자율배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권고를 수용해 배상 절차에 나선 것인데 실제 배상비율 조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예상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이 이번주 이사회를 열고 홍콩 ELS 손실 관련 자율 배상 방침을 확정한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이 2월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하나은행은 27일,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28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자율배상 여부를 결정한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주 후반에 이사회를 열기 위한 일정 조율 중이다.

앞서 지난 22일 우리은행이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기준안 수용을 결정하면서 홍콩 ELS 대규모 손실 사태의 자율배상 물꼬를 텄다. 우리은행은 이르면 이번주부터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된 가입자와 접촉해 본격 조정 절차에 돌입한다.

우리은행이 투자자 보호와 신뢰 회복을 내세워 선제적으로 자율조정에 나서면서 다른 은행들도 배상안 수용이 유력시 된다. 은행권은 과거 외환 파생상품 키코를 제외하면 금감원의 배상안을 대부분 수용해 왔다.

키코는 ‘불공정거래가 아니다’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 때문에 배임 우려가 컸었다. 홍콩 ELS의 경우 우리은행에서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자율 배상을 결정하더라도 배임 혐의가 받을 소지가 없다는 법률 검토 결과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자율배상이 타행으로 확산될지 여부가 관심사항인데 결국 다른 은행들도 자율배상에 돌입할 공산이 크다고 판단한다”며 “은행별로 법률 검토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홍콩 ELS 처리 방안에 대해 은행마다 각자 서로 다른 대응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자율배상 결정을 서두르면서 홍콩 ELS의 손실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홍콩 ELS 평균 손실률이 53.6%임을 감안하면 올해 상반기에만 4조원대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은행과 가입자간 배상비율 조정, 협의 등 절차가 남아 있어 실질적 보상이 이뤄지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결정한 우리은행도 구체적인 조정비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우리은행은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되 투자자별로 고려할 요소가 많고 개별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될 사항인 만큼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산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홍콩 ELS 자율배상은 금감원에서 제시한 배상비율조정안에 따라 은행이 가입자별로 배상비율을 산정해 제시하면 가입자가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고객이 배상비율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로운 비율을 주장할 경우 별도의 협의 과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분쟁조정위원회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분조위 조정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으로 진행된다.

과거 유사 사례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경우 자율배상이 완료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린 바 있다. 지난 2021년 분조위의 조정안이 나온 디스커버리펀드의 경우 3년 넘게 자율배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재조사에 나서면서 다시 분조위가 열리는 분위기다.

홍콩 ELS 가입자 다수가 계약 취소에 따른 전액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마찬가지로 합의율이 높지 않을 수 있다. 홍콩 ELS 피해자모임은 주요 판매사 앞에서 순환 집회를 열고 은행의 사기 판매에 따른 계약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오는 29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총궐기 성격의 집회를 열 계획이다.

홍콩 ELS 피해자모임은 입장문에서 “ELS 상품 판매 관련해 모든 것은 법대로 규정대로 적용하고 실행하면 상품 계약은 원천 무효화로 결론이 도출된다”며 “금융기관이 홍콩 ELS 상품을 피해자들에게 판매할 당시 은행법, 금융소비자 보호법 등 금융소비자 보호 법령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에 합당한 배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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