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취임 직후 차기 우리은행장을 뽑기 위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두 달간 4단계에 걸친 고강도 검증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밀실에서 폐쇄적으로 이뤄지던 관습을 타파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도입하겠다는 임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임 회장이 취임한 지난 24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개최하고 차기 우리은행장 1차 후보군을 선정했다. 이석태 우리은행 국내영업부문장,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부문장, 박완식 우리카드 대표,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등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자추위는 내부 논의만으로 은행장을 선임했던 그동안의 절차와 달리 별도의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번 은행장 선임 절차가 그룹 경영승계프로그램의 첫걸음인 만큼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검증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그간 신기업문화 정립과 조직혁신을 강조한 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은 총 4단계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 1단계는 전문가 심층 인터뷰로 분야별 외부전문가와 워크숍 형태의 1대 1 심층 인터뷰가 진행된다. 2단계는 평판 조회로 임원 재임 기간 중 평판 조회를 다면평가로 실시한다.
3단계는 업무역량 평가다. 그동안의 업적평가는 물론 1대 1 업무보고를 통한 회장의 역량 평가, 이사회 보고 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1~3단계 검증을 통해 4명의 후보군을 2명으로 추린 뒤 4단계 심층 면접을 실시한다. 자추위는 5월 말 최종 심층면접과 후보자들의 경영계획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신임 우리은행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수십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포함된 후보풀에 대해 서류나 평판 조회를 통해 능력이나 경력을 검증해서 롱리스트와 숏리스트를 뽑고 거시서 심층면접과 PT를 통해 최종 후보자를 뽑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같다”면서도 “이번에는 검증 기간이나 검증 평가 과정이 강화됐고 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금융지주의 경우 은행장 경영승계프로그램 절차와 후보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 내부 절차를 통해 차기 행장 최종 후보 1인 선정까지 마친 뒤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신한금융은 지난달 초 한용구 전 신한은행장이 건강상 이유로 물러나자 곧장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가동해 이틀 만에 정상혁 부행장을 후임으로 뽑았다.
하나금융도 지난해 12월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하나은행, 하나증권, 하나카드 등 3개 자회사 CEO 최종 후보를 곧장 추천했을 뿐 세부 절차와 후보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은행권에서는 은행장 선임 절차가 반드시 공개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선임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오히려 내외부에서 혼선이 커서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초 임 회장이 취임 즉시 차기 우리은행장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앞서 임 회장은 내정자 신분으로 우리은행을 제외한 계열사 7곳의 CEO를 교체한 바 있다.
하지만 임 회장은 밀실에서 차기 행장을 뽑는 대신 경영승계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구체적인 인선 과정을 공개해 그룹 내 고질적인 파벌싸움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며 “조직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잘못된 관행이 있는 분야는 과감한 혁신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은 이번에 도입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시행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회장, 은행장, 임원 등 경영진 선발을 위한 경영승계프로그램의 시스템을 구축한다.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도입한 경영승계 방식이 금융권에서 새로운 아젠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불협화음이 생기거나 문제점이 노출될 수 도 있다”면서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 두 번 안착이 되면 이 경영승계프로그램 자체가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의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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