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신한금융그룹이 ‘그룹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새 역할을 제시했다. 이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고탄소 산업의 전환을 지원하는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을 체계화한 금융권 첫 사례로 주목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국내 금융사 최초로 그룹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친환경으로 전환해 나가기 위한 ‘그룹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한다.

신한금융은 국내 금융사 최초로 그룹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친환경으로 전환해 나가기 위한 ‘그룹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한다. (자료=신한금융그룹)

전환금융은 고탄소 산업과 같이 친환경 전환이 필요한 부문에 대한 금융지원을 통해 환경 성과를 개선하고 금융사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는 금융기법이다.

최희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녹색금융을 넘어선 전환금융의 부상’이라는 보고서에서 “국내에 2030년까지 1000조원 규모의 전환금융 수요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환금융 관련 정책 및 가이드라인이 정립되지 않았다”며 “금융회사는 단순 대출을 제공하고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 조건으로 기업에 탄소 감축을 요청하는 등 대출 과정 전후에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한금융의 이번 조치는 전환금융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와 체계적 관리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동안 통일된 기준이 부족했던 전환금융 분야에서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에 기반한 표준화된 심사 및 관리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신한금융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대출 및 투자 자금이 전환금융 요건에 부합하는지 심사해 고탄소 산업에 대한 자산을 단계적으로 녹색금융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는 금융사 자산 자체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실질적 실행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선언적 의미를 넘어선다.

특히 EU, 일본 등 주요국의 전환금융 관리체계를 분석해 국내 산업 구조와 감독 방향에 맞춤으로써 글로벌 스탠더드 부합성도 확보했다. 신한금융은 올해를 그룹 차원의 전환금융 내재화 파일럿 기간으로 삼고, 전 그룹사 공감대 형성과 함께 감독당국의 전환금융 관리지침 제정에도 적극 참여할 방침이다.

신한금융이 전환금융 제도화에 나서면서 기존 녹색금융 중심의 기후위기 대응에 머물러 있던 국내 금융권에 패러다임 변화가 촉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녹색금융이 이미 친환경적이거나 저탄소 활동을 하는 기업과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면 전환금융은 아직 친환경으로 전환하지 못한 ‘갈색 분야’까지 포괄해 실질적 친환경 구조 전환을 돕는다는 차별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금융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나 친환경 교통 인프라 구축 등 명확한 친환경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며 자금 사용처와 프로젝트 선정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반면 전환금융은 철강, 시멘트, 해운 등 탄소집약적 산업이 친환경 구조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자금 사용처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기업의 구체적인 탄소감축 목표와 전환계획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실제 2020~2021년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친환경·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융자를 확대해 왔다.

KB금융그룹은 ESG 금융상품을 목적사업 및 대상에 따라 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와 3개 분야를 통합한 ESG 통합 금융상품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를 반영한 ‘ESG 금융 심사 시스템’을 구축해 녹색분류체계에 적합한 경제활동인지를 심사해 금융 지원을 진행한다. 우리금융그룹은 기업이 ESG경영목표를 세우고 목표수준에 도달할 경우 일정범위 내에서 우대혜택을 적용하는 지속가능연계대출 방식으로 ESG금융상품 판매를 확대 중이다.

신한금융은 여기에 고탄소 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통해 저탄소 공정으로 전환을 돕겠다는 것이다.

다만 녹색금융과 마찬가지로 전환금융도 ‘워싱 리스크’가 상존한다. 이는 탄소집약적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명분으로 자금을 지원했지만 실제로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탄소배출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신한금융은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해 전환금융의 개념과 지원 대상을 명확히 정의하고 자의적 해석을 방지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출 및 투자 자금의 용도가 전환금융 요건에 부합하는지 심사해 전환금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감독당국의 연내 전환금융 관리지침 제정 과정에 참여하고 아시아 전환금융 스터디그룹(ATFSG)에 참여해 관리체계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가기로 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선언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실행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신한금융의 기후리스크 대응 의지를 담고 있다”며 “국내 금융사 최초로 명확한 기준을 정립한 만큼, 책임감을 갖고 저탄소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