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의대에 매달리는 청년들, 그들 잘못인가..대통령실, '범부처 솔루션' 검토

김병욱 기자 승인 2023.02.26 09:05 의견 1

[한국정경신문=김병욱 기자] 최근 의과대학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의대가 우수한 이공계열 인재들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의대 쏠림' 현상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X
서울의 한 의과대학 [자료=연합뉴스]

26일 교육부에 따르면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2020년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10년에 걸쳐 모두 4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의대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정원이 18년째 동결돼 있어 의대로 가는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은 항상 치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이과가 상위권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더 커진데다 취업난까지 맞물리면서 의대의 인기가 더 높아지는 모양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다양하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2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서울과 수도권 소재 12개 의대의 경우 이월 인원이 1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시모집의 경우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의학계열 등록포기자는 지난해 94명에서 올해 63명으로 크게 줄었다.

서울대 의대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등록을 포기하지 않았고, 연세대 의대는 8명(전년 10명), 고려대 의대는 4명(전년 6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와 달리 이들 학교의 다른 이과계열 학과에서는 최초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사례도 나타났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모집인원 대비 130.0%, 연세대 컴퓨터과학과는 120.6%, 연세대 약학과는 116.7%의 포기율을 보였다.

등록을 포기한 합격자들은 서울대 일반학과 또는 타 대학 의·약학계열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입시업계의 분석이다.

그런가 하면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22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자퇴생 수를 분석했더니 1874명 중 1421명(75.8%)이 자연계열이었다.

3개 대학의 자연계열 자퇴생 비율은 2020년 66.8%를 기록한 뒤 계속 높아졌다.

서울대는 지난해 자퇴생 341명 중 자연계가 275명(80.6%)으로 인문계(66명)의 4.2배에 달했다. 연세대도 자연계 자퇴생이 72.7%, 고려대도 76.4%를 차지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들 학교의 자연계열 중도탈락 학생은 반수 또는 재수를 통해 의약학계열에 진학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X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서 열린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주최 2023 대입 정시모집 설명회 참석자가 책자를 살피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분야 계약학과도 의대의 인기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의대 선호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결국 처우나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최고라는 인식이 여전히 확고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의사의 평균 임금은 약 2억3070만원이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임직원(등기임원 제외)의 평균연봉은 1억4000만원 수준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입사원 초임은 5000만원 안팎이다.

공공기관과 비교해봐도, 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올라온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 24곳의 공시자료를 보면 정규직 1인당 평균 보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1억1595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안전성평가연구소가 6809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X
20일 오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수출기업 현장방문으로 세종시에 있는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비전세미콘을 찾아 윤통섭 대표로 부터 플라즈마 클리너, 오븐 등 각종 장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수한 젊은이들이 의료계로만 몰리자 대통령실도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이 부처별로 대책을 제시하고, 대통령실이 이를 하나로 모아 조정하는 '범부처 솔루션'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직업의 안정성과 급여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어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지는 않았다"며 "정원 문제를 포함해 의대 관련 사안은 워낙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이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