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절반 이상 채권 재분류로 자본 관리..RBC 비율 신뢰성 우려↑

조승예 기자 승인 2021.01.04 19:37 의견 0
생보사 채권 재분류 현황 [자료=보험연구원]

[한국정경신문=조승예 기자] 보험업계에서 일부 보험사들이 실제로 금융자산의 큰 변화가 없지만 채권의 자산 분류를 반복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지급여력 지표를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어 보험사 RBC비율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4일 보험연구원 'KIRI 리포트'에 실린 '채권 재분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10년간 생명보험사 24곳 중 13곳이 채권 재분류를 시행했다.

장기손해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 15곳 중 6곳도 채권을 재분류했다.

생보사 10곳과 손보사 4곳은 2차례 이상 채권을 재분류했다. 그중 생보사 3곳과 손보사 2곳은 재분류 횟수가 3회 이상이었다.

채권은 매도가능금융자산 또는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행 회계 기준에 따르면 매도가능금융자산은 시장 가치로, 만기보유금융자산은 원가로 각각 평가된다.

따라서 금리 하락 시 채권을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하게 되면 금리 변화가 반영되지 않아 추가 자본 확충 없이도 장부상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자본력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이 상승하게 된다.

생보사 8곳은 금리가 계속 하락한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해 금리 추세를 자본 확충에 활용하는 추세가 관찰됐다.

국고채 금리는 2018년부터 다시 하락했지만 이 시기에도 만기보유증권으로 재분류한 회사들은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 적이 있는 회사다.

손보사는 금리가 급격히 하락한 2016년 전후로 매도가능증권으로 채권 재분류가 집중됐다.

그러나 금리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된 채권은 가치가 내려가고 RBC 비율은 하락하게 된다.

보험연구원 노건엽 연구위원과 이연지 연구원은 "일부 보험사는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 후 RBC 비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으나 금리 변동으로 RBC 비율이 하락하자 채권을 다시 만기보유증권으로 재분류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보험사는 채권 재분류를 RBC 관리 수단으로 활용한 탓에 금리에 따라 RBC 비율 변동성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화생명의 경우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2014년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던 채권을 모두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재분류했다. 이로 인해 거액의 평가이익을 인식해 RBC비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 금리 상승이 예상되자 2017년에는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던 채권의 절반을 다시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하고 2018년에도 매도가능금융자산 일부를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재분류했다.

그러나 재분류 이후 예상과 달리 금리가 하락해 채권의 공정가치가 상승하자 한화생명은 평가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못하게 되어 오히려 RBC비율 면에서 손해를 봤다.

노건엽 연구위원은 "주로 중소형 생보사들이 채권 재분류 반복하는 행태를 보인다"면서 "지난해 3분기에 보험사의 RBC 비율이 전체적으로 7.5%포인트 개선됐으나 4분기에 금리가 제법 상승했기 때문에 올해 들어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 RBC 비율이 나빠졌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자산의 경제적 실질에는 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류 변경을 통해 자본비율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보험사 RBC비율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노 연구위원은 "새로 도입될 시가기준 신(新)지급여력제도(K-ICS)는 모든 자산과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므로 채권 재분류로 지급여력비율을 관리할 수 없다"며 "채권 재분류는 형행 제도에서만 유용한 방안이므로 이익의 내부 유보, 유상증자, 신종자본증권 등 근본적인 자본 확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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