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년을 되돌아보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

민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더온)

민지훈변호사 승인 2023.04.13 09:09 | 최종 수정 2023.04.13 10:07 의견 0
민지훈 변호사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에 따라 성실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병역의 의무에는 ‘신성하다’는 수식이 낯설지 않게 붙고는 한다. 70년 분단국가의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20대 나이의 일부분을 병사로 지내야 하는 남성들의 이해를 바라는 수식어다. 부정하게 이행하지 않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이들이 밝혀지면 공분이 들끓는다. 국가 안보가 정점에 두는 의무 특성과 복무기간 동안 누릴 수 있던 기회비용을 떠올릴 때의 상실감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처음 시대의 화두로 여겨졌을 때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분이 들끓었다.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이를 반영했다. “병역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고,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2004도2965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상 다른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였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예비군훈련 거부에 대한 형사처벌에 대하여 2014년 첫 판단을 내린 뒤부터 2011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합헌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국가에 권고하였다.

법원의 판결은 때로는 개별 분쟁에 대한 판단을 통하여 사회적 갈등의 가늠표를 제시하여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때로는 변화된 시민사회의 의식 변화를 반영하여 사회적 가치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첫 판단으로부터 14년이 흘러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구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다. 헌법재판소는 결정 다음 해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이 반영된 개선 입법 시한으로 명시했다.

대법원 역시 같은 해 11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따라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응하지 않을 예외적인 ‘정당한 사유’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해당한다고 인정하며 태도를 바꿨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의 개선 입법 시한을 꽉 채운 2019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체역법을 통과시켰고, 병역법 중 대체역과 관련된 규정들이 개정되어 2020년 1월 1일부로 시행되었다. 대체역 편입 사유를 종교적 신념보다 더 넓게 적용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체역은 교정시설 등 공익이 필요한 업무에 배치되어 현역의 2배인 36개월을 복무기간을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2020년 10월부터 대체복무요원들의 복무가 시작되었다.

대체역법에 따른 대체복무제 도입은 만 2년 6개월을 넘긴 현재 시점에서도 환영과 아쉬움의 평가를 함께 받고 있다. 매년 500명가량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으로 갔던 청년들을 떠올려 공익 목적 근무를 이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 대한 환영, 현역 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가 고려된 2배 복무기간에 대하여 징벌적이라는 아쉬움이다. 적어도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따라 병역을 이행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을 새롭게 다져가는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다.

근래 대법원은 사회복무요원 근무 거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법리가 사회복무요원 등의 복무이탈에 관한 규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확인하였지만, “공익목적 수행에 필요한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등의 사회서비스업무 및 행정업무 등의 지원을 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하여금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복무의 이행을 강제하더라도 그것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2020도15554).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위 판결은 2018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이 이루어져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사의 상고를 통해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2018년 12월은, 현역병에 대한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이 내려진 직후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 인정에 얹힌 무게추를 덜어내고, 현역병과 사회복무요원 복무 형태와 내용 차이를 살펴 구체적 타당성을 찾아내는 데 다시 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정책 방향과 변화된 사회적 가치를 조화롭게 바라보는 사법부의 시각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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