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하는 국회에게는 일하는 국회법이 필요 없다

민지훈변호사(법무법인 더온 )

민지훈변호사 승인 2023.03.23 07:11 | 최종 수정 2023.03.23 07:17 의견 0


2021년 3월부로 시행된 개정 국회법에 따라 국회 각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는 매달 두 차례 이상, 법안을 다루는 심사소위원회는 매달 세 차례 이상 열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에 충실히 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입법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이루어진 입법이었다. ‘일하는 국회법’이라 불렸다. 2023년 3월 현재 만 2년을 갓 넘긴 일하는 국회법을 지킨 상임위원회는 17곳 중 한 곳도 없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단면이다.

인플레이션을 잡아두고자 취한 급격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2022년 내내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거래 절벽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겠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올해 2월 법률 개정을 마치고 보도자료 발표일로 소급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2023년 3월 현재 정부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상공인 임대료 및 에너지 요금 지원,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 등 비슷한 상태의 법안들이 함께 국회에 머물러 있다.

정책 목적으로 세제 완화나 혜택을 한시적으로 부여해왔던 법률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지난해까지 일몰 기한으로 적용되던 한시법들의 후속 입법이 감감 무소식이다. 30인 미만 중소기업 대상 8시간 추가연장 근로제가 대표적이다. 연말에 지적되던 문제가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근로시간 개편안 화두에 휩쓸려 개별 대안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국회가 제때 일을 하지 않으니 국회만이 할 수 있는 법률안 처리가 이루어질 리 없다.

국회는 헌법상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입법기관이다. 헌법의 터울 안에서 국가공동체의 문제에 대하여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실현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 받은 국회의원들이 모여 국가의 이익을 위해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강점이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일하지 않는 국회에게 이 모든 의의들은 무용한 선언에 불과하다.

국회의 입법 지연 문제는 늘 반복되어 왔다. 국회 내부 요인과 정부와의 관계 등 국회 외부 요인을 나눠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의 움직임도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일하는 국회법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개선이 아니라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해를 넘길 때마다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일하는 국회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던지 지난해 여야 모두 민생법안은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여당은 ‘10대 법안’이라는, 야당은 ‘우선추진 7대 민생법안’이라는 간판을 내세웠다. 기필코 통과시키겠다던 10대 법안과 7대 민생법안 모두 절반도 통과되지 못했다. 오히려 간판을 앞세워 입법 주도권 힘겨루기로 이어져 민생법안이 정쟁화 도구로 이용되었다.

국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쟁에는 최선을 다했다. 대장동 이슈와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대통령 배우자 특검 추진 등 바람 잘 날이 없는 정치 풍토 앞에 다른 비쟁점 법안들마저 휩쓸렸다. 경제든 민생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결과를 승패로 나누고 과정은 서로 주고받을 걸 계산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입법 과정에 정치적 가치에 따른 쟁점화나 공방은 이상적인 기대에 가깝다. 결코 아름답지 못한 정쟁의 스포츠화다.

치열한 정쟁 와중에 국회가 오랜만에 할 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여주는 이른바 ‘K칩스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마쳤다는 소식이다. 1년 가까운 계류를 마치고 매듭을 지었다는 점에서 협치의 결실로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협치가 다른 법률안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긍정의 평이다. 시기를 놓친 입법이 입법을 전제로 두는 정책 효과를 쉽게 무력화한다는 건 이미 절실히 확인하고 있다.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법적안정성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국회 스스로뿐이다. 일하는 국회법을 굳이 떠올릴 필요 없도록 스스로 존재 의의를 바로 세우는 제21대 국회가, 정당이, 국회의원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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