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기세중..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세상·무대를 꿈꾸다

이슬기 기자 승인 2018.02.20 18:09 | 최종 수정 2021.08.02 08:55 의견 0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기세중을 만났다.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청년 기세중은 거침이 없었다. 말을 잘 못 한다면서도 질문마다 솔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진지한 생각과 거짓 없는 이야기들. 무대에서도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이해됐다. ‘안나 카레니나’의 배우 기세중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사실 기세중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 꾼 것은 아니었다.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는 설명이다. 고3 때 ‘무한도전’ 이산 특집을 보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기 싫은 오기로 더욱 연기에 빠져들어 갔다.

이후 홍광호의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배우가 되자”는 꿈이 생겼다. 작품 안의 사상과 가치관이 꼭 제 것 같았고 그를 노래하는 배우가 너무 빛나 보였다는 것. 그에게 그런 경험이 있는지 물으니 연극 ‘보도지침’을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살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못 하는 현실을 말하는 극이에요. 슬프면서도 공감이 갔죠.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인데 무대에서 내 신념을 후련하게 꺼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적어도 무대에서 거짓말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고 또 생각했죠.”

그의 신념은 작품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것. 또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출연중인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서는 “순수한 사랑. 진짜 행복한 삶”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기세중은 현재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무대에 오르고 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원작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오페레타 씨어터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여인 안나 카레니나가 젊은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는 농업으로부터 러시아와 사람들의 미래를 찾는 청년 레빈을 연기한다.

원작 소설에서 레빈은 안나와 함께 주인공으로 평가받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도덕성, 러시아 사회에 대한 시선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방대한 양의 소설을 압축하면서 레빈의 역할이 대폭 줄었다. 기세중 또한 “톨스토이가 쓴 이미지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레빈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극에서 이 캐릭터가 가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적었거든요. 예를 들면 1막 시작하자마자 사랑을 고백하고 차인 뒤 사라지죠. 갑자기 고백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전달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2막도 마찬가지다. 원작 소설 속 레빈이 의미하는 복잡한 가치들을 모두 주목할 수는 없다는 것. 대신 안나와 브론스키의 위험한 사랑과 대비되는 키티와의 순수한 사랑이 그 자리를 채운다. 기세중은 “하나만 생각하고 있다”며 “이 사람이 정말 순수하게 사랑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레빈을 연기하기에는 전 좀 어려요. 소설 캐릭터도 32세 중반이죠. 그래서 순수한 에너지에 더 집중하는 길을 택했어요. 저도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요. 이 캐릭터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았고 거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기세중은 뮤지컬에 큰 뜻은 없었다. 스스로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 입시학원에서 노래를 잘하는 친구를 만났고 승부욕에 노래를 연습했지만 작은 특기일 뿐이다. 입시시험에서도 노래가 아닌 춤을 선보였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팬텀싱어’ 도전이 더욱 신선했다. 기세중은 화제가 됐던 ‘팬텀싱어’ 출연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즐겁고 행복했지만 또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 그는 “누구를 밟고 올라가는 느낌이 드니까 버거웠다”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로 내가 진심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팬텀싱어’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인터넷으로 지원했어요. 제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노래 실력을 체크해보고 싶었어요.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놀랐죠. 솔직히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작품을 만날 기회도 얻은 게 사실이고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 기회를 얻은 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그에 책임감을 가지고 잘 해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시종일관 꾸밈없는 말과 에너지로 대화를 이끈 기세중을 보면서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이 감사한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며 긍정적인 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제나 사람은 힘들어질 수 있고 괴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대에서도 그래요. 저는 연기하면서 소소하게 행복을 계속 찾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앞으로 나서는 장면이 아닌데도 뒤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게 참 좋아요. 그걸 봐주시는 관객을 만날 땐 더 뿌듯하고요. 그런 소소한 행복이 원동력이에요. 언제나 잊지 않았으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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