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균의 참견]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가계대출 관리, 떠밀린 '은행의 시간'
윤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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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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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
지난 10일 18개 국내은행장과 간담회 직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불과 2주전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던 이 원장이기에 이날 사과 발언의 파장은 셌다.
놀라고 당혹스럽기는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주초만 해도 이날 간담회를 통해 금융당국의 정제된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최근 2개월 간 은행권 가계대출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시작은 지난 6월 은행 가계대출이 6조3000억원이 늘어 10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찍으면서다.
지난해 말부터 지속돼 온 ‘상생금융’ 기조에 대출금리를 낮춰온 은행들은 7월 들어 속도 조절에 나섰다. 마침 금융당국에서도 “가계대출 관리하라”는 메시지가 내려왔다.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금리 하락세에 대응했다. 그 결과 두 달 새 22차례 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이자장사’ 비판이 따라 붙었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을 조이면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은 커지고 그만큼의 은행의 이익은 늘어나게 된다. 이미 은행권은 상반기 동안 역대급 이자이익을 달성한 상태였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었다. “대출 금리 인상은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라고 “금융당국의 정책 혼선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 연기 결정은 막판 주담대 수요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언론도 주로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간 가계대출 정책에 있어선 ‘강경파’였던 이 원장마저 은행의 자율을 강조하고 나섰으니 더는 ‘금융당국 책임론’에 숨을 수 없게 됐다. 당국이 실수요자 판단을 은행 자율에 맡긴다고 한 이상 앞으로 사태 수습의 책임은 은행의 몫이 됐다.
가계대출 시장 상황은 더욱 복잡해 졌다.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계대출을 조이려다 보니 한도·만기 조정,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 유주택자 신규 주담대 중단 등이 동원됐다. 여기에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예외조항도 적용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대출 현장에서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여전히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별로 제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은 1주택자의 수도권 소재 주담대 취급을 중단했지만 NH농협은행은 2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해서만 중단했고 하나은행은 별도 제한이 없다.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도 5대 은행 가운데 하나은행을 제외한 4곳에서 시행 중이다.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예외조항도 은행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은행들은 예외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실수요자 사례에 대해서는 ‘심사전담반’을 운영해 조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10일 간담회 이후 은행들은 저마다 ‘신중 모드’에 들어갔다.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장 모니터링과 가계대출 수요 변동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은행들도 은행권 공통의 가이드라인까지는 아니라도 일관된 기준은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갖고 있다.
통상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가계대출 수요는 더욱 증가한다. 은행별 대출 총량은 이미 꽉 찼고 은행 대출에 기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계절적으로 이제 막 여름이 끝났지만 가계대출 시장에서는 벌써 겨울 한파가 불고 있다. 은행들이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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