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는데 무시할 수가 있나"..자녀 미끼 '메신저피싱' 피해만 수백억

메신저피싱 피해액 9.1%↑ 보이스피싱 65%↓
피해 연령 85.8%가 50·60대..자녀사칭·대출빙자
경찰 "피싱범죄 근절에 금융기관 등 협력 절실"

이정화 기자 승인 2021.04.18 12:00 의견 0
[자료=게티이미지뱅크]

[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엄마 난데 휴대폰 액정 깨져서 수리 맡겼고 컴퓨터로 문자 중이야", "엄마 급한데 나 대신 친구한테 돈 좀 송금해 줘", "신분증 사진 좀 보내줄 수 있어?"

주변에서 자녀를 사칭해 '핸드폰을 분실했다'며 상품권이나 주민등록증, 카드 번호, 유료 결제 등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은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보이스피싱은 대폭 줄었지만 메시지를 활용한 '메신저피싱'은 나날이 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전년 대비 65% 줄었지만 가족과 지인 등을 사칭한 메신저피싱 피해액은 9.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메신저피싱 피해가 전체 피해액(2353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9%(373억원)로 전년 대비 10.8%포인트 증가했다. 피해액은 ▲2018년 216억원 ▲2019년 342억원에 이어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353억원으로 ▲2018년 4440억원 ▲2019년 6720억원에 견줘 크게 줄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두고 "보이스피싱 예방 노력과 코로나19로 사기 조직의 활동이 제한된 것이 피해액 감소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녀를 가장한 피싱 메시지가 최근 남녀노소 불문 퍼지고 있다"며 "물론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피해 액수로 따지면 여전히 수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주의를 놓쳐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피싱범들은 주로 50·60대를 타깃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메신저피싱 피해자 연령은 50대(43.3%)와 60대(42.5%)가 전체의 85.8%를 차지했다.

특히 사칭형 피해는 50·60대 여성의 피해액이 55.5%로 가장 비중이 컸다. 대출 빙자형 피해는 40·50대 남성의 피해액이 38.7%다.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이체한 경로는 ▲모바일·인터넷뱅킹이 75.2% ▲창구·현금자동입출금기(ATM) 13.5% ▲텔레뱅킹 4.8% 순으로 많았다.

이같은 피싱 사기를 향한 지적은 수년 째 제기돼 왔다. 문제는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단 점이다.

실제로 메신저피싱을 겪어 본 피해자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는 대체 어디까지 팔려나갔나. 최근에 범인이 나를 사칭해서 엄마에게 구글기프트권 구매를 요구했다", "지방 별로 도는 중인지 한 지역에서 피해자가 계속 나온다 하더라", "핸드폰 유료결제 해달라며 몇 백 날릴 뻔했다가 신고접수 돼서 다행히 피해 안 입었다" 등 사기 경험을 털어놨다.

최근 지인 A씨의 어머니에게 전송된 '자녀사칭형' 보이스피싱 문자 [자료=금융감독원]

금감원도 가족·지인 사칭형 피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지난 5일 소비자 경보 '주의'를 발령한 바 있다.

금감원은 "가족·지인을 사칭하며 신분증 사진 제공 등을 요청하는 문자를 받았을 때 일단 의심하고 반드시 직접 전화해 확인 후 대응해야 한다"며 "자녀를 사칭하며 재촉하더라도 신용카드계좌번호 제공 요청이나 악성앱·팀뷰어 설치 요청 등에 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당부에 금융권도 피싱 예방에 손을 보태는 모양새다.

특히 카드사들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지연 송급이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등 방어책에 더해 메신저피싱 근절을 위한 수사 자료 제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NH농협카드와 우리카드는 최근 서울경찰청과 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각 카드사는 부정사용 및 자가이상거래 등 다양한 이상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탐지시스템으로 피싱 범죄를 사전 차단하는 데에 주력하고 수사 자료를 제공키 위한 협력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신종 범죄 수법과 유형을 공유해 새 범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협력할 계획이다.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은 "피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금융기관 등 관련 업계 및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딸을 사칭한 문자와 대출인 척 사기 치는 문자 모두 받아봤다"며 "전화 사기와 달리 문자는 언제 어디서든 보내버리면 그만이라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일단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등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50대 부모를 둔 20대 자녀 A씨는 "자녀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문자가 자주 와서 부모님과 암호를 정해놓았다"며 "엄마가 내게 '엄마!' 라고 문자를 보내면 나는 '바보!'라고 대답하기로 했고 대답을 못하면 내가 아니니 바로 문자를 지우기로 하는 등 가족끼리 예방책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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