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언어의 품격- 오세훈, 안철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를 보며

김성원 기자 승인 2021.03.18 16:41 의견 1
반병희 컬럼니스트 [자료=한국정경신문]

[기고=반병희 컬럼니스트] 정치는 광장을 좋아한다. 정치는 언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정치는 둘을 합친 ‘광장의 언어’를 애용한다. 광장은 수많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열림의 미학으로, 언어는 누군가를 내 울타리에 가둬 놓는 유능함으로 정치를 받치는 두 축이 돼왔다. 아고라에는 언어가 넘쳤고 로마 광장에는 정치가 넘쳤다. 무솔리니가 매일 같이 베네치아광장에서의 발코니 연설을 위해 아예 베네치아궁을 주거 겸 집무실로 삼은 것도, 히틀러가 생전에 수십 개의 광장을 만든 광장 광(狂)이었던 이유도 광장과 언어가 주는 정치의 마성(魔性)때문이었다.

스탈린의 크렘린광장, 마오쩌둥의 천안문광장, 김일성의 중앙광장, 박정희의 여의도광장에서는 언어가 가득했고, 정치가 파도쳤다. 군중은 광장의 언어에 열광했다. 광장의 공허와 언어의 휘발성은 이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광장의 정치가, 광장의 언어가 ‘구름이라는 캔버스’에 그려진 화려한 수채화라는 사실을, 구름이 흩어지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공허와 적막이라는 사실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정치는 상징체계다. 정치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많은 상징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활용한다. 언어, 문자, 이미지, 집단행위, 예술, 스포츠 등등이 의사전달의 기호와 상징의 도구로 쓰인다. 이중에서도 언어는 그 효과와 효율성 때문에 아테네나 은나라 주나라 이후 정치상징의 주요 수단이 돼왔다. 특히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소쉬르식의 반사경으로, 또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 있는 유효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정치행위에서 언어는 ‘광장의 정치언어’와 본질적인 면에서 동의어라 할 수도 있다. 표의적인 문자나 소리의 표기형태로서가 아니라 광장의 분위기, 상황, 의미, 내용 등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광장의 정치언어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정치문화와 정치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광장의 사람들을 군중(群衆)으로 전락시킬 것인가? 아니면 성숙한 시민으로 예우할 것인가를 결정해온 가름대도 정치리더들의 정치언어 수준이었다.

윈스턴 처칠이 정치언어의 조련사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이다. 처칠은 “전쟁을 할 때는 결단이, 패배를 하면 반항이, 승리를 하면 아량이, 평화시에는 선의가 필요하다” 등의 주옥같은 광장의 정치언어를 남겼지만, 상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품격있는 화술로 정치언어를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처칠이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다. 상대당 후보는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처칠은 굉장히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는 자다. 학교도 부모빽으로 입학했고…중략…저런 게으른 자를 어떻게 의회에 보내겠나?”. 처칠은 “당신도 나처럼 예쁜 아내를 갖고 있다면 결코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고 응수했다.

총리를 할 때다.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의회가 설전을 벌이던 중 휴회를 한 틈을 타 처칠이 화장실을 갔다. 의원들로 만원이 된 화장실에 빈 변기가 하나 있었다. 국유화를 주장하던 애틀리 노동당 당수가 볼 일을 보던 바로 옆 변기였다. 처칠은 빈 변기를 사용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윽고 일을 마친 애틀리가 처칠에게 물었다. “내 옆에 빈 자리가 있는데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나에게 불만있습니까?”. 처칠이 답했다.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뭐든지 국유화를 하자고 하는데, 내 큰 것을 보면 내 물건도 국유화하자고 달려들까 봐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 정치언어의 해학이자 품격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대통령은 직설적이고 거칠은 언어로 상대를 비방하고 깍아내리는 차원을 넘어 정치의 민주적 절차와 정치언어를 망가트린 인물로 꼽힌다.

트럼프야 자신의 권력유지와 지지기반의공고화를 위해 천박하고 비루한 말을 서슴없이 이용했겠지만, 문제는 상스럽기까지 한 이런 파괴적인 정치언어가 정치불신은 물론 정치 쟁점의 본질을 왜곡했다는데 있다. 국민이나 국가를 위한 정책대결보다는 상대의 말꼬투리를 잡아 지지자들로 하여금 조리돌림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상대를 황색언론의 먹잇감으로 제공하는데 집중하기도 했다.

잘못 사용하는 정치언어의 부작용과 우려가 4ㆍ7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재현되는 것 같다. 거칠은 정치언어의 생산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집권 여당 발이 많다. 잇따른 여론조사에서 결과가 신통치 않자 초조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예컨대 여당 인사들이 국민의 힘 오세훈후보의 내곡동 땅 처리와 관련해 “LH사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라거나 “뻔뻔하다” ”MB보다 더한 행태” “~ 작태” 등이라며 연일 감정적 언어를 쏟아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다는 예의 개인사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 투기가 아다” “시세보다 평당 100만원이상 낮은 가격으로 강제 수용됐다” “지구지정이 이전 정권때부터 이미 시작됐다”라는 해명보다는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으로 관여한 적이 있지 않았느냐’라는 데만 초점을 모으고 있다. 그것도 인신공격성의 감정적 표현으로. 여기에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 마저 ‘상왕’이니 뭐니 하면서 가세를 하고 있다. 광장의 퇴행적 정치언어가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과거 보수진영의 ‘김대중 빨갱이’, 진보진영의 ‘나경원의 1억 피부과’론의 반복이다. 광장 언어의 부작용이다.

오세훈 후보를 편들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격한 여권지도부의 정치언어는 결코 민주당 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현실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혐오증까지 갖게 된 데는 정치언어의 황폐화가 크게 작용했다.

이제라도 청량하고도 정제된 정치언어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올라 갈 것이다. 민주당 또한 정치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킨 정당으로도 깊게 각인될 것이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수많은 정책적 논란과 시비를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정치언어로 하고 싶은 말은 다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참고하면 된다. 개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그가 구사하고 있는 정치언어 만큼은 신선하고 상쾌하다. 높은 인기의 비결 중 하나다.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 정치언어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후보가 누가 되든 정치언어의 오염을 비판하고 배척할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높아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광장의 언어, 광장의 정치언어의 격을 높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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